“저는 원래 나서는 걸 싫어해요.” 10만 택시기사 집회에서 당당하게 무대에 섰던 그는 의외의 말을 했다. 고함과 욕설이 여기저기서 쏟아지고 물병에 휘발유까지 날아오던 험악한 자리였다. 택시업계의 사회적 대타협기구 참여 보이콧부터 이해당사자 간 회의의 파행이 반복되기를 4개월째. 정부·여당과 택시업계, 카풀(승차 공유)업체가 참여한 사회적 대타협 기구는 지난 7일 극적으로 타협안을 도출했다.
더불어민주당 택시·카풀 태스크포스(TF) 위원장을 맡아 택시업계와 카풀 서비스 사이의 대타협을 이끌어낸 전현희(55) 의원을 15일 국회에서 만났다. 그를 향하던 택시기사들의 손가락질은 악수로, 고성은 “미안하다, 고맙다”는 따뜻한 말로 바뀌었다. 겨우내 얼어붙어 있던 택시업계는 어떻게 마음을 열었을까.
4개월의 지난했던 협상 과정을 돌이키는 전 의원의 얼굴은 한결 편안했다. 협상이 틀어질 때면 집에 돌아가 눈물을 흘렸고, 너무 힘들어 쓰러질 뻔한 적도 있었다고 했지만 그에게는 어떤 단단함이 느껴졌다. 무슨 힘으로 이겨냈느냐는 질문에 그는 “제가 경력이 특이하잖아요.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어 왔던 제 인생 때문이 아닐까요”라고 답했다.
치과의사에서 변호사, 국회의원으로
전 의원은 민주당 국회의원으로는 이력이 특이하다. 시민단체나 운동권 출신이 아니고 ‘최초의 치과의사 출신 변호사’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다. 경남 통영 출신인 그는 서울대 치의학과를 졸업한 뒤 3년간 치과의사로 일하다 사법시험에 합격해 변호사가 됐다. 잘 닦여진 길을 걷던 그의 삶은 혈우병 치료제를 복용하다 에이즈에 걸린 환자들이 제약사인 녹십자홀딩스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을 맡게 되면서 새로운 길로 접어들었다. 2001년부터 준비를 시작한 소송이 2013년 서울고법에서 조정으로 마무리되기까지 10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누가 봐도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이자, 계란으로 바위 치기였다. 그걸 10년을 매달리니 끝내 피해자가 보상을 받게 됐다.” 10년 넘게 법적 분쟁을 진행하다보니 끈질기게 남을 설득하는 힘이 자연스레 붙었다. 그는 “아무도 하지 않으려 했고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했던 사건이었다. 그런데 10년이라는 시간을 들였더니 결국에는 좋은 결론이 나오더라. 사회적 약자를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구나, 그때부터 그런 자신감이 생겼다”고 했다.
이 승소 소식이 알려지자 정치권에서 러브콜이 쏟아졌다. 그는 정치인으로 변신한 배경에 대해 “변호사는 의뢰인만 도와줄 수 있는데 국회는 대한민국을 바꿀 수 있지 않나. 세상에 대한 헌신과 내 능력을 좀 더 많은 사람을 위해 써야겠다는 목표, 그게 정치를 하는 이유가 됐다”고 말했다.
비례대표로 18대 국회에 입성한 전 의원은 서울 강남을 지역구에서 19대 총선을 준비했다. 송파갑에 출마하라는 제안도 있었지만, 오랜 터전인 강남을을 고집했다. 정동영 의원과의 당내 경선에서 패배한 뒤에도 다시 강남을에 뛰어들었고, 결국 20대 총선에서 금배지를 달았다.
“강남을에 도전한다고 했을 때 우리 당 의원들뿐 아니라 주변에서도 불가능하다고 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나 자신에게 ‘너 멋져’라고 당당하게 말하고 싶은 마음이 여기까지 오게 했다.”
택시-카풀 갈등, 설득으로 풀어
전 의원은 지난해 11월 민주당 택시·카풀 TF 위원장으로 임명됐고, 사회적 대타협기구는 올해 1월 22일 출범했다. 대타협기구는 5차 회의를 연 끝에 합의를 이뤘다. 공식 회의는 5차례였지만 물밑 협상은 매일 진행됐다. 전 의원은 대타협기구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택시 업계를 하루에도 몇 번씩 찾아가 설득했다고 한다.
“온갖 모멸과 멸시를 당하고도 계속 찾아갈 국회의원이 얼마나 있겠나. 묵묵히 듣고 대화를 시도하니까 결국에는 그분들도 미안하다고 하더라.” 전 의원의 협상 노하우는 끈기였다.
3명의 택시기사가 카풀 도입에 반대하며 분신하는 등 해결이 난망했던 택시·카풀 갈등은 평일 출퇴근 시간에 2시간씩 카풀 서비스를 허용하는 것으로 절충점을 찾았다. 원칙적인 합의는 이뤘지만 국회에는 관련 규제를 완화하는 입법과 플랫폼 업계의 서비스 도입이라는 과제가 남았다.
전 의원은 “택시를 이용한 새로운 플랫폼 산업이 생기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지금 노는 택시가 많다. 운행시간 규제 때문에 영업을 못 하는 택시를 활용하자는 것”이라며 “시민은 불편이 줄어들고, 택시 산업은 전체적인 파이가 커지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규제를 없애면 다양한 모델이 가능해진다. 여성 전용, 애완견 전용 택시가 많이 생겨날 것”이라며 “현재는 불법인 심야 카풀 영업도 규제 완화로 가능해질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전 의원은 “정치사에서 모범이 될 만한 사회적 대타협을 이뤘다고 많은 분들이 평가를 해주셨다. 이런 역할을 할 수 있었다는 게 영광”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지난해 서울시장 출마 뜻을 내비쳤던 그에게 차기 행보를 물었더니 “아직 이른 질문”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이번 대타협으로 얻은 ‘협상가’ 이미지는 그의 새로운 이력으로 남을 듯하다.
심희정 기자 simci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