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원 “문 대통령은 김정은 대변인”… 난장판 된 교섭단체 연설

입력 2019-03-13 04:00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12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하던 중 “대한민국 대통령이 김정은 수석대변인이라는 낯 뜨거운 이야기를 듣지 않도록 해주십시오”라고 말하자 홍영표(오른쪽)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이철희(오른쪽 세 번째) 원내수석부대표가 단상으로 올라가 항의하고 있다. 정양석 한국당 원내수석부대표가 이들을 막아섰다. 이날 본회의장은 고성과 몸싸움으로 난장판이 됐다. 최종학 선임기자

“더 이상 대한민국 대통령이 김정은 수석대변인이라는 낯 뜨거운 이야기를 듣지 않도록 해주십시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이 발언이 발화점이었다. 더불어민주당 쪽에서 “취소하라” “무슨 소리하는 거야”라는 고성이 일제히 터져 나왔고, 의원 10여명은 그대로 본회의장을 나가버렸다. 시작부터 심상치 않은 기류가 흘렀던 12일 나 원내대표의 원내교섭단체 대표연설은 기어코 난장판으로 변했다.

나 원내대표는 ‘김정은 수석대변인’이란 말을 한 오전 10시23분쯤부터 20여분간 민주당의 항의와 야유에 막혀 연설을 중단해야 했다. 7년 전 날치기 법안 처리나 몸싸움을 없애기 위해 국회선진화법을 도입했던 여야는 이날 그 이전 상태인 ‘동물적 국회’ 직전까지 갔다.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가 노기를 뿜으며 단상으로 올라가자 한국당에서는 정양석 원내수석부대표와 정용기 정책위의장이 나섰다. 곧 이철희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와 권성동 한국당 위원도 가세했다. “이게 무슨 교섭단체 연설이야” “야당이 이 정도 말도 못하나” “그만해” “듣기 싫으면 나가” 등의 고성과 삿대질이 뒤섞였다. 이 수석부대표가 야당 의원을 향해 “쳐봐, 쳐봐”라며 외치는 장면도 포착됐다.

나 원내대표는 “외신에 나온 얘기를 한 것”이라고 항변했다. 지난해 9월 미국 블룸버그통신이 ‘문재인 대통령, 유엔에서 김정은의 수석대변인(top spokesman)이 됐다’는 제목으로 보도한 기사를 인용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 의원들은 “사과해”를 연호했고, 한국당은 “잘한다”는 응원으로 맞섰다. “조용히 해 달라”는 문희상 의장의 거듭된 요청도 소용없었다.

나 원내대표는 “야당에 귀 닫는 이런 여당의 오만과 독선이 대한민국을 무너뜨리고 있다. 할 말 있으면 정론관(국회 브리핑룸)에 가서 하시라”고 격앙된 목소리로 외쳤다.

결국 문 의장이 다시 나서서 “국회는 이렇게 하는 곳이 아니다. 품격 있고, 격조 있게 하라. 나도 ‘청와대 스피커’라는 소리(지난해 9월 김성태 전 한국당 원내대표 발언)를 듣고도 참았다”며 꾸짖은 뒤에야 소란이 가라앉았다. 문 의장은 “아무리 말이 안 되는 소리라도 듣는 게 민주주의”라며 나 원내대표에 대한 불만도 드러냈다.

나 원내대표는 “의장님 말씀에 일부는 감사드리지만, 일부는 ‘역시 민주당 출신 의장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응수한 뒤 연설을 이어갔다. 그는 현 정부의 각종 정책을 ‘좌파’ 틀로 묶어 매섭게 몰아붙였다. 더 이상의 충돌은 빚어지지 않았지만 “문재인정부는 좌파 포로정권” “촛불 청구서에 휘둘리는 심부름센터” 등 표현이 나올 때면 민주당의 야유도 같이 나왔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12일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마치고 국회 본회의장을 나오면서 자신의 이름을 연호하는 사람들을 향해 두 손을 들어 보이고 있다. 이날 나 원내대표의 연설은 문재인 대통령을 ‘김정은 수석대변인’으로 지칭한 발언 때문에 고성과 몸싸움으로 얼룩졌다.뉴시스

연설이 끝나자 한국당 의원들은 나 원내대표에게 기립박수를 보냈다. 민주당 의원들은 잔뜩 굳은 표정으로 퇴장했다. 나 원내대표는 “국민은 다른 소리를 듣지 않으려는 민주당에 실망했을 것”이라며 의기양양해했지만, 그의 연설 이후 정국은 급속히 얼어붙었다.

민주당은 긴급 의원총회를 열어 나 원내대표를 집중 성토했다. 이해찬 대표는 “‘김정은 수석대변인’ 발언은 정치적으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 대한민국 국가원수에 대한 모독죄”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나 원내대표가) ‘좌파정권’이란 말을 몇십 번 한 것 같다”며 “냉전체제에 기생하는 정치세력의 민낯을 보는 것 같았다”고 했다. 홍 원내대표도 “이런 식으로 국회를 난장판으로 만들고 국론을 분열시키는 것에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13일 나 원내대표를 국회 윤리특별위원회에 제소키로 했다.

청와대도 참전했다. 한정우 청와대 부대변인은 “나 원내대표의 발언은 국가원수에 대한 모독이자 한반도 평화를 염원하는 국민에 대한 모독”이라며 “혹여 냉전의 그늘을 생존의 근거로 삼았던 시절로 돌아가겠다는 발언이 아니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에 황교안 한국당 대표는 “오히려 여당이 사과해야 한다”고 맞섰다. 황 대표는 “제1야당 원내대표가 연설하는데 중간에 달려들어 고함지르고 얘기를 못하게 하는 것은 민주주의 모습이 아니다”며 “누가 누구한테 뭐라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민주당의 윤리위 제소 방침에 대해서는 “그런 부당한 조치가 있으면 정말 단호히 대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지호일 심우삼 기자 blue5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