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국 중앙은행, 글로벌 경기 둔화에 ‘돈 풀기’ 움직임

입력 2019-03-13 04:03

깊어지는 글로벌 경기 둔화에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다시 ‘돈다발’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긴축’ 대신 경기 부양을 위한 ‘양적완화’로 흐름을 바꾸려는 움직임이다. 하지만 ‘돈 풀기’ 통화정책에 따른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와 약발이 먹히겠냐는 의문이 따라붙는다.

이미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이어가고 있는 일본은행(BOJ)은 조금씩 ‘완화’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블룸버그는 이코노미스트 46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37%가 일본은행의 향후 통화정책으로 경기 부양을 위한 ‘추가 완화조치’를 예상했다고 12일 밝혔다. 지난 1월 실시한 같은 설문 응답률(18%)의 배를 넘겼다. 이코노미스트들은 오는 14일부터 이틀 동안 열리는 일본은행 통화정책회의에선 기존 정책을 유지할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미묘한 흐름 변화가 감지된다. 글로벌 경기 둔화세가 확산되면 엔화 가치 상승을 막기 위한 조치가 불가피하다. 엔화 가치 상승은 일본의 핵심 성장동력인 수출에 타격을 주기 때문이다. 도카이 도쿄리서치센터의 무토 히로키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일본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와 유럽중앙은행(ECB)의 ‘비둘기 변신’(통화완화 선호)을 무시할 수 없다”고 진단했다.

중국의 경우 채권 매입과 같은 양적완화 정책이 나올 수 있다는 전망이 흘러나오고 있다. 자본유출 위험으로 기준금리를 쉽게 인하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인프라 투자 확대에 따른 채권 발행 증가가 대안으로 떠오르는 것이다. 지급준비율(은행이 고객으로부터 받아들인 예금 중에서 중앙은행에 의무적으로 적립해야 하는 비율)에선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인민은행은 유동성 확대를 위해 지난해부터 지급준비율을 다섯 차례 내렸다. 지난달에만 두 차례에 걸쳐 지급준비율을 1.0% 포인트를 낮춰 1억5000만 위안(약 253조원)을 시장에 풀었다. 인민은행은 금융기관이 기업에 적용하는 ‘실질적인(actual) 대출금리’를 조정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사실상 기준금리 인하로 볼 수 있다.

유럽중앙은행은 ‘양적완화로의 유턴’을 단행했다. 유럽중앙은행은 지난 7일 통화정책회의에서 올해와 내년도 성장률 전망을 낮추고, 기준금리 인상을 연기하기로 했다. 3차 장기특정대출프로그램(TLTRO)도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이 프로그램은 유로존(유로화 사용 국가)의 시중은행에 값싼 금리로 대출해 주는 제도다. 유럽중앙은행이 양적완화를 끝내기로 한 지 3개월 만에 급선회한 셈이다. 전문가들은 “지정학적 요인, 보호무역주의 위협, 신흥시장 취약성 등이 유로존의 성장 전망을 끌어 내리고 있다”고 분석한다.

경기 상황이 좋은 미국도 슬금슬금 ‘긴축’에서 발을 빼고 있다. 미국 연준은 기준금리 인상 시기를 늦추겠다는 입장이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최근 “미국의 기준금리를 서둘러 인상할 필요가 없다”고 밝혔다. 오는 19일(현지시간)부터 열리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를 앞두고 기준금리 결정과 관련해 ‘인내’하겠다는 기조를 재확인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중앙은행들의 ‘비둘기 변신’이 마냥 능사는 아니라고 본다. 돈을 늘리는 통화 팽창은 목숨을 다한 ‘한계기업’의 구조조정을 지연시키는 독이 될 수 있다. 자산가격의 거품을 부추기면서 담보가치를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특히 이번 완화 정책이 긴축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나온 만큼 앞으로 또 다른 위기가 닥쳤을 때 내놓을 카드가 마땅치 않을 수 있다. 국제결제은행(BIS)의 클라우디오 보리오 통화·경제부문 총괄은 “긴축 과정은 멈췄고 예측하기 어려워졌다. (통화정책) 정상화를 위한 좁은 길은 험로가 될 것 같다”고 내다봤다.

박재찬 기자 jeep@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