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파’와 ‘프리스피치’, 정치·이념·종교적 극단주의에 빠진 밀레니얼세대

입력 2019-03-16 04:01



요즘 미국 대학가의 정치적 이슈는 안티파(Antifa, Anti-Facism Movement)와 프리스피치(Free Speech Movement)다. 반(反)파시즘을 뜻하는 전자뿐 아니라 후자 역시 언뜻 보면 민주주의를 옹호하는 진보적 색채의 운동을 의미하는 듯하다. 하지만 실상은 전혀 다르다.

안티파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집권한 2017년 초 즈음으로 미국뿐 아니라 서방 세계 전역에서 모습을 드러낸 극좌파 행동단체 연합으로, 우익에 반대하는 모든 종류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집단이다. 일상적인 집회뿐 아니라 특정 인사에 대한 폭력 행사, 공공시설과 사유지 사유건물 공격 등도 자행한다. 이들의 선전매체는 안티파를 반(反)자본주의, 반(反)유대주의, 반(反)정부를 표방하는 모든 좌파의 결합체라고 규정하고 있다. 사회주의, 공산주의, 무정부주의 이념이 뒤섞여 있다. 구성원 대다수는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 태어난 20대 초중반의 밀레니얼세대다. 대학에서 현재의 사회질서와 윤리를 설파하는 교수들을 공격하고, 글로벌 기업의 사유시설을 공격하기도 한다. 미국에선 해가 갈수록 안티파 가담 20대가 급증하고 있다.

프리스피치(자유발언운동)은 안티파의 정반대 지점에 서 있는 극우단체다. 미국 내 신(新)나치, 인종차별 신봉자들, 스킨헤드 백인우월주의자그룹 등이 연합해 탄생한 조직이다. 이들이 일으킨 대표적인 사건이 2017년 8월 버지니아주 샬러츠빌에서 벌어진 로버트 L 리 장군 동상 철거반대 시위 사태다. 주정부의 동상 철거에 반대하기 위해 모인 이들이 동상 철거에 찬성하는 시민들을 무차별 공격해 한 명을 사망케 한 일이다. 단체 이름을 자유발언으로 정한 건 다분히 정략적이다. 절차적 민주주의를 내세우면서 ‘백인의 우월성, 나치즘이 탁월한 사회개혁 프로그램이라고 자유롭게 말하는 게 왜 죄가 되느냐’는 식이다. 역시 이 극우단체연합 구성원의 중심은 밀레니얼세대다.

안티파와 프리스피치는 길거리에서 서로 대결한다. 완전히 다른 노선과 이념, 생각을 지니고 있지만 행동 패턴은 거의 똑같다. 법과 질서에 아랑곳없이 정당하다고 여기는 모든 폭력수단을 동원한다. 목적만 이루면 그뿐이라는 것이다. 이 두 극좌·극우 행동단체는 2019년 현재 세계 곳곳에서 주류로 자리잡기 시작한 극단주의 팽배의 전(全)지구적 현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일지 모른다.

세계 정치의 기로, 극단주의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 역시 세계인들에게 익숙한 현실주의 공화당 보수파가 아니라 자국 이익을 위해선 어떤 행동도 감행하는 공화당 극우파에 해당한다. 반대편의 민주당 역시 분배적 정의를 위해선 자본주의 경제의 틀을 깨도 좋다고 생각하는 극단적 진보주의자들이 당의 주류를 장악해가고 있다. 벌써 미국 정가에선 “2020 대선에선 공화당 극우를 대변하는 트럼프 대 민주당 극좌를 대변하는 일인(一人)이 대결하게 될 것”이란 전망이 나도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유럽은 더하다. ‘하나의 유럽’이라는 탈(脫)냉전시대 이후 유럽 정계의 공통된 합의는 깨졌다. 그것도 핵심인 영국 보수당 정부에 의해서 말이다.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선 극우 정치세력이 선거 때마다 15%이상의 지지를 받아 안정적 의석을 확보하는 실정이고, 철저하게 극단주의를 경계해온 2차대전 전범국 독일에서도 극우세력의 의회 진입이 현실화됐다. 정정이 불안한 동유럽 체코, 슬로바키아, 폴란드, 헝가리에선 극우에 해당하는 우파 정권이 득세한 지 5년이 넘었다.

‘2대 강국’으로 부상한 중국에선 냉전체제 해체 이후 지속돼 왔던 공산당 내부의 민주화 흐름이 완전히 멈춘 채 시진핑 영구집권설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중국은 러시아와 연합해 미국에 정치·경제·군사적으로 대결하는 새로운 신(新)냉전체제의 불을 댕기고 있다.

극단주의 발원지, 이슬람

극단주의 발원지는 이슬람이라 할 수 있다. 2차대전 종식 이후 서구 열강의 식미지에서 벗어난 중동지역에서 발원한 이슬람 원리주의의 세계관은 기독교와 서구는 무조건 적(敵)으로 여긴다. 알카에다부터 이슬람국가(IS)까지 세계 곳곳에서 온갖 종류의 테러와 고문, 살인, 전쟁 등 악행을 서슴지 않았다.

이슬람 원리주의는 미국과 서구문명을 항상적으로 자신들을 착취해온 악으로 해석한다. 이 악을 제거하지 않으면 그들의 신 알라가 말한 ‘진정한 평화’가 오지 않으며, 이 평화를 위해선 자살폭탄 공격까지 감행해 목숨을 버려야 한다고 설파한다. 빈곤한 조국을 등지고 생존을 위해 서구 유럽으로 이민했던 중동인들의 후손 밀레니얼세대가 IS의 성전에 참여하기 위해 시리아와 이라크로 향했던 풍경은 이슬람 원리주의가 얼마나 무서운 이데올로기인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극단주의가 이슬람에만 국한된 건 아니다. 이스라엘의 유대교우월주의나 편협한 형태의 기독교우월주의 등도 이에 해당한다. 관용과 용서, 포용과 이해보다는 이교도에 대한 적대감, 배타주의적 태도가 몸에 밴 종교적 극단주의는 신정일치(神政一致)가 해체된 현대사회에서도 여전히 ‘물 밑에 숨겨진 기뢰’처럼 휘발성을 지니고 있다.

베이비부머에서 밀레니얼로

사진=게티이미지

정치학자들은 21세기로 접어들어 유독 극단주의가 발흥하는 원인을 주로 전(全)지구적 세대교체에서 찾는다. 20세기 초중반 전 세계를 휩쓸었던 1, 2차 세계대전의 경험을 직간접적으로 공유하지 못한 밀레니얼세대가 정치적·이념적·종교적 극단주의에 빠질 위험성이 이전 세대보다 훨씬 높다는 게 요지다.

1950~70년대 사이에 태어난 세대를 베이비부머라고 한다. 이들은 서국 제국주의 세력의 식민지 쟁탈, 경제 독점권 등을 놓고 충돌한 1차대전과 나치 선풍이 점령했던 2차대전을 경험한 부모로부터 극단주의적 행태와 사고방식이 인간에게 얼마나 큰 비극을 가져오는지를 전수받은 세대라 할 수 있다. 또 서구 민주주의와 공산주의가 대결했던 냉전시대의 참상도 직접 경험한 세대다. 이들에게 “무조건 단 하나만이 옳다”는 식의 신념은 낡고 위험천만한 허위의식으로 낙인찍혔다. 종교적 다원주의, 정치적 민주주의, 사회적 다민족주의, 전지구적 세계주의 등이 베이비부머세대를 대표하는 시대정신이었으며, 1980년대~90년대 초반 태생의 X세대에게도 이런 정신적 유산은 공유될 수 있었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 태어난 밀레니얼세대들의 세계관은 이전 세대와는 확 달라졌다. 극단적 형태의 마르크스·레닌주의가 어떤 광기를 부르는지, 극단적 형태의 우익 파시즘이 어떤 비극을 잉태하는지, 종교적 근본주의가 어떻게 인간을 도구화하는지 직접적·간접적 경험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안티파의 행태는 현대사회보다 20세기 초반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초창기형에 가까운데도 안티파 조직원들은 이 점을 전혀 의식하지 못한다고 한다. 프리스피치 조직원들 역시 미국 남북전쟁 당시에서 존재했을 법한 인종우월주의의 유치한 논리에 급급한데도 더 많은 백인들, 더 많은 젊은세대들을 끌어모으고 있다.

한 전문가는 “서구사회의 안티파와 프리스피치 대결을 보면 지금 세계의 젊은세대가 얼마나 극단주의에 취약한지 잘 알 수 있다”면서 “이들에겐 인간의 극단적 이념, 종교, 이데올로기가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낳는지 경험하지 못했고 읽지도 않았다”고 했다. “밀레니얼세대의 세계관이 이전 세대처럼 충분한 경험과 사고, 독서를 기반으로 형성된다기보다 미디어와 인터넷을 통한 짜깁기식 선입견에 큰 영향을 받는다고 봐야 한다”고도 했다.

신창호 기자 proc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