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담양 목사의 사진과 묵상] 갈대가 들려준 속 깊은 지혜를 듣다

입력 2019-03-15 18:28
전담양 목사가 지난달 강원도의 한 바닷가에서 해가 저물 때쯤 찍은 갈대 사진. 뒤편으로 갯벌이 보인다.

어린아이들의 얼굴과 생김새 그리고 하는 행동과 말을 보면 그 부모가 누구인지 알 수 있습니다. 서로를 향한 사랑과 새로운 생명을 향한 기대가 녹아져 있기 때문입니다. 지나가는 발걸음 속에 스쳐 지나가는 나무 한 그루, 꽃 한 송이, 새 한 마리의 날갯짓, 아침에 뜨는 해와 밤의 고독을 위로하는 달빛, 영원한 우주 속에서 살아있음을 반짝이는 별빛…. 이 모든 것 속에는 하나님의 창조와 열심의 땀방울, 은혜의 지문이 묻어있습니다. 하나님의 따스한 손길이 그리울 때마다 일상의 테이블 위에 “잠시 쉬었다 올게요”라고 쪽지를 적어놓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 속으로 안식 여행을 떠납니다.

지난달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갈대밭을 걸어봤습니다. 평소에는 그렇게 쓸쓸해 보이던 갈대가 이날은 빛 아래서 왜 그렇게 따스하고 사랑스럽게 보이는지, 이야기 좀 들어보려고 무릎을 꿇고 앉아 내 마음 갈대에 전해봅니다. 그리고 마음 주파수를 돌려서 갈대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갈대는 바람 따라 흔들린다고 합니다. 베르디 오페라의 가사처럼 갈대는 이리저리 흔들리고 흔들립니다. 변덕이 심하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갈대 자신은 그런 존재가 아니라고 합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자기를 향해 붙여놓은 선입관일 뿐 창조주 하나님은 자기를 그렇게 만드시지 않았다고 말해줬습니다. 갈대가 이리저리 흔들리는 것은 바람의 방향에 예민하기 때문입니다. 바람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한 방향과 능력이 있으므로 갈대는 그 바람이 지금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를 가리키고 있을 뿐입니다.

성령의 임재, 성령의 인도하심도 사람의 눈에 쉽게 보이지 않습니다. 성령은 그 힘을 이용해 자기의 만족을 채우려는 시몬과 같은 사람이 아니라 묵묵히 주도권을 내어놓고 인도하시는 방향에 따라 순종하는 사람에게 충만으로 역사하십니다. 또한 갈대는 물가에서 뿌리를 내리고 자랍니다. 갈대와 모양이 비슷한 풀 중에 ‘억새’라는 것이 있습니다. 겉으로 봐선 그 모양이 매우 비슷합니다. 그러나 갈대와 억새의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다면 사는 장소입니다. 억새는 산이나 들, 양지바른 곳에서 자라납니다. 열매가 자라나도 그 고개를 쉽게 숙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갈대는 물가를 떠나서는 자라지 못하고 열매가 조금만 자라도 고개를 숙인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했던 믿음의 사람들은 언제나 물 가까이에 거했습니다. 그 물가는 잠시 흐르다 멈추는 그릿 시냇가가 아닙니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않는” 은혜의 샘물이 흐르는 곳입니다. 은혜의 샘물에 인생의 뿌리를 깊게 내리고 말씀을 깊이 묵상하며 하나님과 교제하기에 그 믿음의 색이 계절과 상황, 사건과 사람에 따라 변질되거나 퇴색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인생 속에서 여호와 이레의 역사를 통해 거둔 축복 앞에서 겸손히 엎드려 하나님께 감사하고 또 감사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잠시 쉼을 기대하며 나왔던 길가에서 만난 갈대는 오늘 내 인생의 자리가 그렇게 힘들고 어렵지 않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줬습니다. 저무는 해가 있기에 쓸쓸해 보이던 갈대도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저물어 가는 고독 속에서 하나님의 창조 손길이 묻어난 갈대를 만나 대화할 수 있었고 창조 이야기를 들으며 “오늘 내 삶도 주님의 창조요, 주님의 작품이요, 주님의 섭리 안에서 자라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당신의 삶의 자리는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인생의 바람이 이리저리 마음을 흔든다 해도 그 바람에 꺾이지 말고, 수많은 순간 속에 찾아오시는 성령을 느껴보십시오. 세상이라는 산에 뿌리내리는 인생을 멈추고 목자 되신 주님의 샘물에 인생을 심으십시오. 세월이 흐를수록 딱딱하고 교만한 사람이 되지 말고 겸손한 사람이 되십시오. 그래서 분별력을 잃고 순간순간 흔들리는 그 누군가의 인생을 향해 성령의 실재와 은혜 안에 있는 축복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하나의 갈대가 되기를 바라봅니다.

“사람들의 발에 밟혀 꺾어지고 잃어버린 잡초가 되기보다

찾는 이 아무 없어도 은혜에 심겨져

하나님의 얼굴 떠오르는 사랑의 일출 보며

살아가는 갈대가 되고 싶다.”(전담양의 시 ‘갈대가 되어’ 중에서)


전담양 목사<고양 임마누엘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