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으려면 친구도 밟고 올라서야 한다?… 사활 건 전장”

입력 2019-03-12 04:02 수정 2019-03-15 17:34

‘사활을 건 전장.’

한국 대학생 80.8%가 생각하는 우리나라 고등학교 이미지다(2017년 한국개발연구원 조사). 치열한 전장에서 살아남으려면 누군가를 밟고 올라서야 한다고 20대들은 배워왔다. 드라마 ‘SKY 캐슬’에 나오는 치열한 입시 경쟁이 현실과 흡사하다고 느끼는 이들이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취재진은 이런 경쟁사회 속에 살고 있는 20대 청년 10명을 만났다. 기사에 등장하는 ‘고독인’씨의 이야기는 그들의 발언을 토대로 재구성한 것이다.

고독인(가명·25)씨가 ‘경쟁사회’ 속에 살고 있다는 걸 느낀 건 고등학교 때다. 시험이 끝나면 복도에 시험 등수가 공개됐고 전교 40등까지는 특별반으로 분류됐다. 특별반 학생은 점심시간에 줄을 서지 않고 급식을 받았고 명문대 선배와의 만남, 입시 컨설팅 등 특별대우를 받았다. 누군가 시험을 망쳤다고 하면 남몰래 기뻐하는 아이들도 많았다. 반 친구 모두가 사실상 라이벌이었기 때문이다.

대학에 가서도 경쟁은 계속됐다. 어떤 교수는 학생들에게 발표를 시킨 뒤 다른 학생들의 투표로 점수를 매겼다. 고씨는 졸업이 다가오자 초조해졌다. 영상마케팅 분야에서 일하고 싶었지만 포기하고 공기업 시험을 준비했다. 1년6개월이 지나자 친구 만나는 게 불편해졌다. 친구들의 취업 성공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불안해져서 아예 SNS를 끊어버렸다.

고씨는 대학생 익명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서 위로를 받는다. “힘들다. 나 좀 위로해줘. 펑펑 울면 나아질까” “저 잘하고 있다고 한 번만 위로해주세요.” 에브리타임엔 이런 글들이 하루에도 수십개씩 올라온다.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20대들이 경쟁으로 인해 얼마나 지쳐 있는지 보여준다. 고씨는 이런 글을 보면 ‘나만 이런 건 아니구나’ 싶어 위안이 된다고 했다. 고씨는 “저는 대학 시절 남들보다 뒤처지지 않으려고 아등바등 살았어요. 그러나 남들의 성공을 보면서 상대적 박탈감만 커졌죠. 나의 가치를 인정받으려면 친구의 성공을 깎아내려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저만 더 외로워졌습니다”라고 말했다.


경쟁사회에 놓인 20대들은 외롭다. 국민일보와 대학내일20대연구소가 지난 1월 11~14일 전국 20대 3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모바일 여론조사에서 ‘취업준비를 하는 동안 자존감이 떨어졌다’는 응답은 전체의 55.3%였다. ‘친구를 경쟁자로 보게 됐다’는 응답자도 46.0%였고, ‘가까운 친구와 멀어졌다’는 응답도 35.0%로 나타났다. 인수현(가명·23)씨는 11일 “같은 직무에 지원하는 친구들이 경쟁자로 보이기 시작했다”며 “친구보다 스펙이 뒤처졌다는 걸 알면 ‘그동안 뭐 했나’ 하는 자괴감에 빠진다”고 말했다. 로스쿨생 이진욱(가명·24)씨는 “수강신청 기간에 한 학생이 로그아웃을 안 한 친구의 PC에 몰래 접속해 신청한 강의를 전부 뺐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