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 : ‘내 기도하는 그 시간’ 364장(통 482장)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마태복음 6장 7~8절
말씀 : 한 성도님께서 제게 “기도를 왜 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본질상 우리 기도를 들으시길 기뻐하는 분이시기 때문이라고 답했습니다. 소통은 완전하신 하나님의 형상(이미지) 중 하나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소통의 능력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소통을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부모와 자녀가 소통할 때 왜 기쁠까요. 남녀가 사랑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듯이 그것은 말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단지 부모는 자녀가 먹고 싶고, 입고 싶다는 것을 말할 때 기쁩니다. 우리 기도를 통해 누리시는 하나님의 기쁨 역시 그러하다고 주님은 설명하십니다. 하나님은 어떤 필요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 ‘말씀드리는’ 자녀로 인해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기도에 대해 가르치실 때 이방인처럼 의미 없는 말의 반복, 곧 주문과 같이 반복하는 것을 금하십니다.(7절) 말을 많이 반복해야만 요구를 들어주시는 분으로 하나님을 이해하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모독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이방인들이 우상의 노여움을 피하거나 무엇인가를 얻어내기 위해 행하는 방식일 뿐입니다.
주님은 구하기 전에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다 아실 만큼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한다고 밝히십니다.(8절) 이 말씀을 들어 어떤 사람들은 기도의 무용성을 말합니다. 다 알고 계시는데 굳이 기도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오히려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을 곤란하게 만드는 행위라고 말하려 합니다. “하나님께서 어련히 잘 아셔서 행하실 텐데, 왜 기도를 통해 어떤 영향을 주려고 하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주장은 ‘미리 아신다’의 강조점이 ‘먼저 알고 계신다’가 아니라 ‘그만큼 관심하여 아신다’에 있다는 점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기도의 무용성이 아니라 잘못된 기도가 어떤 것인지 알리시기 위해 주신 가르침이라는 것을 놓친 주장입니다. 주님은 분명 “너희들이 기도할 때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원한다는 것을 전제한 것입니다. 주님은 분명 구하고 찾으며 두드리라 하셨습니다.(마 7:7)
하나님은 우리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아실 만큼 사랑의 아버지이십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우리가 그것을 위해 하늘 아버지께 구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말을 많이 해야만 들어주시는 인색한 분이 아니십니다. 자녀의 소리를 하나도 남김없이 들으시기를 원하시는 아버지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많은 말을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로서의 전적인 신뢰’를 원하십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고 기도하라고 하신 이유가 그것입니다.(9절) 자애로운 아버지이기에 우리가 구하여 부를 때 하늘에서 들으시고 응답하시리라는 것, 기도에 대한 주님의 분명한 약속입니다.
기도 : 하나님, 때로 어디로 나아갈지 모르는 캄캄한 어둠 속에서도 아버지로서 우리의 목소리를 듣기 원하신다고 하셨사오니 용기를 내게 하옵소서. 그렇게 주어진 용기와 평안 가운데 저희 역시 세상의 외치는 소리를 늘 듣게 하옵소서. 오늘도 하늘 아버지의 모습 그대로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이들에게 넘치도록 주게 하시고, 문을 열어 영접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기도문
김희승 목사 (파주 하늘소망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