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논단-정두언] 정치는 아무나 하나

입력 2019-03-12 04:02

열정·책임감·균형감각 필요… 안철수 고건 반기문 세 가지 중 일부나 모두 갖추지 못해 낙마
황교안 열정 있지만 탄핵총리로서의 책임감과 5·18 관련한 균형감각 있을지 지켜 봐야


2011년 9월 2일 서울 서대문구청 강당. 토크콘서트가 열리는 현장이다. 주인공이 입장하자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카메라 플래시가 일시에 터졌다. 우리나라 언론이란 언론에서 다 나온 듯한 기자들이 우르르 몰려들자 만면에 웃음을 머금은 주인공이 다소 수줍은 듯 입장했다. 당시 지역구 국회의원으로서 내빈석에 앉아 있던 필자의 옆자리에는 마침 법륜 스님이 있었다. 그때 법륜 스님이 혼잣말처럼 내뱉은 말이 아직도 귀에 선하다. “참 좋은 때다. 하지만 저것도 한때지….” 당시 정치권에 혜성처럼 등장한 안철수 얘기다. 당초 서울시장을 꿈꾸고 있던 안철수는 자신도 예상치 못한 국민들의 폭발적인 반응에 놀란 나머지 그 좋은 서울시장 자리를 박원순에게 양보하는 척 내어주고, 대권의 길로 들어섰다. 그러나 돌아보면 법륜 스님의 예언처럼 안철수는 그때가 바로 정점이었다. 그는 이후 줄곧 내리막길을 걷다가 이제는 존재감마저 희미해진 상태다.

2016년 여름 정치권을 뜨겁게 달구었던 반기문의 일시 귀국이 있었다. 그는 마치 대통령 언저리에라도 간 듯 전국을 휘젓고 다녔고, 언론은 그의 말 한 마디, 행동 하나까지 놓치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던 그가 이듬해 유엔 사무총장의 임기를 마치고 귀국한 뒤 갈팡질팡 행보를 보이다가 불과 20일 만에 대권 출마 포기를 선언하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2004년 5월 노무현정부의 국무총리직에서 물러난 고건은 거의 1년 동안 대선주자 지지율 1위 자리를 지키며 정치권에서 맹위를 떨쳤다. 그러던 그가 2006년 지방선거를 기점으로 청계천 복원과 대중교통 개혁이라는 업적을 남기고 서울시장 임기를 마친 이명박에게 1위 자리를 내주었다. 그러다 결국 2007년 초 대선 불출마 선언을 하며 정계를 떠났다.

현대 사회의 특징 중 하나는 사회의 복잡다기화다. 사회의 모든 분야가 극도로 세분화·전문화되어 전문가가 아니면 어느 분야에 대해 왈가왈부하기 어렵다. 그런데 예외가 있다. 교육과 정치다. 교육과 정치에 대해서는 우리 국민 모두가 전문가다. 그래서 교육 얘기와 정치 얘기만 나오면 모두가 열을 내가며 논쟁을 벌인다. 과연 그런가. 교육과 정치는 전문 분야가 아닌가. 특히 정치 분야가 더욱 그렇다. 하루 종일 각종 종합편성채널에서 내보내는 정치평론을 들으며 국민들은 스스로를 정치 전문가라고 확신한다. 바야흐로 정치학과 정치학자, 그리고 정치인들은 모두 폐업을 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독일의 저명한 정치사회학자인 막스 베버는 ‘직업으로서의 정치’란 강연을 통해 정치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며, 아무나 해서도 안 된다고 일찍이 설파했다. 그는 정치인의 자질로 열정, 책임감, 균형감각을 꼽았다. 그에 의하면 대의명분에 헌신할 열정과 자기 행위를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지 않는 책임감, 그리고 내적인 집중력과 평정심을 가지고 시대 흐름을 통찰하는 균형감각이 정치가에게 필요하다. 열정에는 책임이 따르며, 균형감각은 열정과 책임의 균형을 이루게 하므로, 균형감각 상실은 정치인으로 하여금 쉽사리 헛된 망상에 빠지게 한다. 그러면서 베버는 “자기가 제공하고자 하는 것에 비해 세계가 너무 어리석거나 너무 야비하더라도 이에 좌절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는 사람, 그 어떤 일에 직면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 이런 사람만이 정치에의 ‘소명’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이런 관점에서 앞의 3인을 평가해 보면, 안철수는 대의에 대한 것이든 권력에 대한 것이든 열정은 대단했으되 책임감과 균형감각이라는 면에서는 형편없는 아마추어리즘으로 스스로 무너졌다. 고건은 책임감과 균형감각은 있었으나 열정의 부족으로 길고 험한 레이스를 견디지 못했다. 반기문은 열정은 물론 책임감과 균형감각도 없이 오로지 꽃가마만 믿고 정치에 뛰어든 격이었다.

국정농단으로 탄핵당한 박근혜 전 대통령 밑에서 총리를 지낸 황교안이 제1야당의 대표가 됐다. 내각을 통할하며 보좌한 대통령이 그 지경이 되었는데, 오히려 지도자가 되겠다고 나선 그의 열정은 그게 대의를 위한 것(신념정치)인지 아니면 권력을 위한 것(권력정치)인지 몰라도 높이 살 만하다. 알다시피 지도자는 권한과 책임을 함께 지는 위치다. 국무총리라면 마땅히 국정 실패의 총책임자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소위 탄핵총리로서의 ‘책임감’은 그가 쉽게 극복하기 힘든 굴레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한편, 지금 그의 앞에는 이미 전당대회 전에 불거진 5·18 폄훼 문제에 대한 사후 처리가 당장의 과제로 놓여 있다. 이는 그가 국민 일반의 통념에 일치하는 균형감각을 가졌느냐 아니냐 판가름하는 시험대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이에 대한 그의 답은 ‘절차에 따라 결정될 문제’라는 것이다. 과연 모범생다운 무미건조한 답이다. 정치 초보라 불리는 황교안이 권력정치와 아마추어리즘을 극복하고 직업 정치인으로서 다시 태어날 것인지 많은 이들이 주목하고 있다.

정두언 전 국회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