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그룹들이 디지털 인재 사냥에 사활을 걸었다. 정보통신기술(ICT) 역량 강화를 핵심 경영 전략으로 내세우고 전문인력 확보를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금융 당국이 핀테크산업 육성에 무게를 싣고 있는 데다 금융과 ICT의 칸막이가 허물어지면서 위기감은 팽배하다. 디지털 경쟁력을 갖추느냐에 생존이 달렸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NH농협금융그룹은 올해 신규 직원 공채부터 디지털 역량과 마인드를 겸비한 직원을 뽑기 위해 채용 방식을 변경한다고 10일 밝혔다. 농협금융의 기본 채용 원칙은 ‘블라인드’다. 외모나 성별, 학력으로 차별하지 않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디지털 역량은 따지기로 했다. 서류 전형 단계에서 자기소개서에 디지털 역량·경험을 쓸 수 있다. 직무능력검사에서 디지털 분야 지식 등을 측정하는 문항도 만든다. 면접 전형에선 지원자들의 디지털 역량을 점검하기 위해 정보기술(IT) 전문가가 면접위원으로 참여할 예정이다. 김광수 농협금융 회장은 “디지털 경쟁력 확보는 조직의 생사가 걸려 있는 중요한 어젠다”라며 “신규 직원 채용뿐만 아니라 기존 직원의 디지털 교육도 병행해 나갈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다른 금융그룹들도 ‘디지털 인재 모시기’에 발 빠르게 나서고 있다. 우리금융그룹은 디지털 전략을 총괄하는 컨트롤타워로 ‘ICT기획단’을 신설하고 노진호 전 한글과컴퓨터 대표를 ICT기획단장 겸 그룹 최고정보책임자(CIO·전무)로 선임했다. 노 전무는 LG CNS 상무이사를 거쳐 2013년 우리에프아이에스(FIS)에서 서비스 운영·개발을 담당했다. 지난해 1월 한컴 대표를 지낸 뒤 1년 만에 우리금융에 복귀하면서 그룹의 디지털 전략을 도맡게 됐다.
하나금융그룹은 올해를 ‘디지털 전환의 원년’으로 선포했다. KEB하나은행에 디지털 전환 특임조직(디지털랩·데이터전략부)을 설치하고 사외이사로 IT 역량을 갖춘 이명섭 전 한화생명 경제연구원장, 김태영 전 필립스아시아태평양 전략사업부문 대표를 신규 선임했다.
신한금융그룹은 인공지능(AI), 블록체인 기반의 새로운 금융서비스를 개발하기 위해 해외 석·박사 출신 인재를 뽑고 있다. KB금융그룹은 2025년까지 디지털 분야에 2조원 이상을 투자하고 관련 인재를 4000여명 육성할 계획이다.
금융그룹들의 ‘디지털 인재 수혈’은 보수적인 관행을 깨고 디지털 분야에서 성과를 내겠다는 복안으로 풀이된다. 새로운 핀테크 업체가 잇따라 등장하는 상황에서 흐름에 뒤처졌다가는 불과 몇 년 뒤의 미래조차 장담할 수 없다는 위기감이 바탕에 깔려 있다. 인터넷전문은행 사업에 4대 금융지주(KB·신한·하나·우리금융지주)가 모두 발을 들인 게 단적인 예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그룹들이 단순히 은행이나 증권, 보험 업무에 IT 서비스를 더하는 게 아니라 아예 IT 기술이 기반이 된 금융서비스를 추구하면서 디지털 인력 확보가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