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 욕심에 과속했나… 정부, 3월 말 5G 상용화 연기

입력 2019-03-08 04:02

정부가 오는 28일을 목표로 준비해온 ‘세계 최초 5G 상용화’ 일정이 사실상 무기한 연기됐다. 정부 예상보다 5G 스마트폰 출시가 늦어지면서 ‘5G 기기 없는 5G 상용화’가 될 처지로 내몰리자 일정을 번복한 것이다. 정작 서비스 주체인 기업들은 준비가 덜 됐는데 정부가 무리하게 ‘세계 최초 대한민국 5G’를 밀어붙였다는 지적이 나온다. 구호만 요란한 정부 일정에 맞춰 서둘러 5G 상용화를 강행해온 통신업계는 난색을 표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7일 “스마트폰 출시 문제 탓에 3월 말 5G를 상용화할 가능성이 높지 않다”며 “여러 가지 요건들이 갖춰지면 그에 맞춰 상용화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특정 시점을 단정하긴 어렵지만 세계 최초 상용화가 불가능할 정도는 아니다”고 덧붙였다. 업계에서도 스마트폰 준비 단계상 4월 상용화에는 무리가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과기정통부는 1년 전부터 최근까지 ‘2019년 3월 한국이 5G를 가장 먼저 상용화할 것’이라고 수차례 강조해 왔다. 유영민 과기정통부 장관은 지난달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세계 최대 모바일 전시회 ‘MWC 2019’ 기자간담회에서 “다음 달 마지막 주 전 세계를 향해 5G 상용화 선언을 한다”며 분위기를 한껏 띄웠다. 스마트폰 제조사들과 이동통신사들도 정부 일정에 따라 3월 말을 마지노선으로 잡고 상용화를 서둘렀다.

하지만 5G 서비스를 구현할 수 있는 첫 기기인 5G 스마트폰 출시가 지연되면서 계획이 어그러졌다. LG전자 ‘LG V50 씽큐 5G’는 핵심 부품인 5G 칩 수급에 발목이 잡혔고, 삼성전자의 ‘갤럭시S10 5G’는 네트워크 최적화 작업에 시간이 더 필요한 것으로 알려졌다.

상용화 시점이 불투명해지자 통신 업계는 혼란에 빠졌다. 한 이통사 관계자는 “기존에 짜놓은 마케팅 일정이 모두 엎어질 판”이라며 “일단 3월 말, 4월 상용화 시나리오 모두 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5G 조기 상용화’에 대한 회의론도 증폭됐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일정 지연으로 5G 경쟁국인 미국과의 상용화 시차가 한 달로 좁혀질 전망”이라며 “‘세계 최초’의 의미가 퇴색된 데다 실익도 줄어들 것”이라고 평가했다. 미국은 오는 5월에 5G 상용화를 실시할 예정이다.

정부가 조기 상용화의 과실로 꼽는 ‘5G 생태계 활성화와 세계 시장 선점’도 과장됐다는 지적이 많다. 당장 5G 킬러콘텐츠로 꼽히는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기기 및 콘텐츠 산업은 이미 페이스북·마이크로소프트(MS) 같은 글로벌 회사가 선점하고 있어 국내 업체들이 진입하기 쉽지 않다. 또 다른 대표 콘텐츠로 꼽히는 ‘스마트팩토리’는 올해 말 관련 이동통신 표준이 완성되고 나서야 서서히 활성화될 전망이다.

오주환 기자 joh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