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정부에서 이해관계가 극도로 첨예한 사회 문제를 푸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다. 바로 공론화와 사회적 합의다. 국민이 직접 참여해 결정하는 공론화의 대표 사례로 ‘탈(脫) 원자력발전’ 결정 과정이 꼽힌다. 사회적 합의는 대통령 직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에 일임됐다. 정부는 노사정으로 국한돼 있던 논의 구조를 바꿔 청년, 여성, 비정규직도 참여하도록 문을 활짝 열었다. 논의 대상도 노동에서 사회 전반의 문제로 크게 넓혔다. 합의된 사안을 입법 기구인 국회에서 준용한다는 절차도 만들었다.
첫 결과물은 지난달 19일 경사노위 산하 노동시간제도개선위원회에서 나왔다. 주52시간 근무제 도입 이후 경영계에서 줄기차게 요구해 오던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에 합의했다. 탄력근로제는 일정 기간의 평균 근로시간이 주52시간을 넘지 않으면 합법으로 보는 제도다. 노동시간제도개선위는 진통 끝에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기존 3개월에서 6개월로 늘리는 데 뜻을 모았다. 지난 5일에는 디지털 전환과 노동의 미래 위원회에서 ‘노사정이 4차 산업혁명에 공동 대응한다’는 두 번째 사회적 합의를 내놓았고, 6일엔 한국형 실업부조(저소득층에게 최대 6개월간 최저생계보장 수준의 급여를 지원하는 제도) 도입의 기본틀도 만들었다.
그러나 세 개의 사회적 합의라는 ‘씨앗’이 경사노위 본회의 의결이라는 ‘열매’를 맺을 수 있을지 불투명한 상황에 빠졌다. ‘나홀로’ 노선을 가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뿐만 아니라 계층별 위원으로 참여한 청년·여성·비정규직 대표가 모두 반기를 들고 나섰기 때문이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은 7일 입장문을 내고 “어렵게 차려진 ‘사회적 대화’라는 밥상을 스스로 걷어차 버린 그들의 가볍고 무책임한 행위에 분노한다”고 비판했다.
다만 자성의 목소리도 나온다. 박태주 경사노위 상임위원은 “회의에서 이들(청년·여성·비정규직 대표)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입장과 함께 소수 의견이 존중되는 장치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며 “경사노위의 의사결정 구조와 운영방식에 문제가 많다. 검토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경사노위의 ‘요식적 의사결정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비판한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각 위원회에 청년·여성·비정규직 대표가 다 참석은 못하더라도 각 위원회에서 합의한 내용을 보고하고 그들의 의견을 반영하는 절차를 거쳤어야 한다”며 “‘거수기’라는 그들의 주장이 근거없는 이야기는 아니다”고 꼬집었다.
구조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세 개의 사회적 합의는 당초 예상과 다른 방향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다.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가 가장 시급하다. 정부가 기업에 주52시간 단속 유예기간을 이달 말까지만 부여했기 때문이다. 경사노위에서 최종 합의를 이뤄내지 못하면 국회로 공이 넘어가게 된다. 한국형 실업부조도 마찬가지다. 문재인정부의 국정과제이기도 한 실업부조 제도는 지속적으로 예산을 투입하는 게 관건이다. 사회적 합의를 바탕에 깔지 않으면 재정 낭비를 우려하는 야당 반발을 넘기 쉽지 않다.
세종=신준섭 정현수 기자, 안규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