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 ‘숨은 재벌’ 손본다… 95명 12조 재산 동시 세무조사

입력 2019-03-08 04:02
김명준 국세청 조사국장이 7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고소득 대재산가 95명을 세무조사한다고 발표하면서 법인자금 유출 사례를 설명하고 있다. 뉴시스

국세청이 중견기업 사주 일가, 부동산재벌 등 고소득 대재산가 95명을 대상으로 동시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대기업 총수 일가 등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과세당국의 검증 기회가 적었던 이른바 ‘숨은 대재산가’를 겨냥한 것이다. 이들은 법인자금을 빼돌려 사치 생활을 하거나 편법 증여, 일감 몰아주기 등을 한 혐의를 받고 있다.

국세청은 95명의 재산이 모두 12조6000억원으로 집계됐다고 6일 밝혔다. 1인당 평균 1330억원에 이른다. 재산 유형별로 주식이 1040억원, 부동산이 230억원이다. 나머지는 이자·배당 등 금융자산으로 추정됐다. 조사 대상은 사주일가의 해외출입국 현황, 고급별장·고가미술품 등 자산 취득 내역, 국가 간 정보교환 자료 등을 분석해 선정됐다. 개인별 재산·소득 자료, 외환거래 등 금융정보, 내·외부 탈세정보 등도 활용됐다. 구간별로 보면 100억원 이상 300억원 미만이 41명으로 가장 많다. 5000억원이 넘는 사람도 7명이나 된다.

한 법인의 사주는 쓰지 않은 판매·관리비를 법인 비용으로 처리하는 수법으로 자금을 빼내 자녀 유학비 등에 썼다가 조사 대상에 포함됐다. 가족의 휴양시설을 회사 연수원 명목으로 사들이거나 직원이 아닌 친인척·자녀 등에게 인건비를 지급한 ‘뻔뻔한 사주’도 감시망에 포착됐다. 매출거래 과정에 ‘유령법인’을 끼워 넣고 통행세를 받거나, 위장계열사와 거래를 하며 과다한 비용을 주는 사례도 있다. 아무런 역할이 없는 해외 위장계열사를 만들어 거래 과정에 끼워놓고 비자금을 조성한 사주도 있다. 일부 대기업의 단골 꼼수로 꼽히는 ‘통행세’ 수법이다.

국세청은 조사대상의 과세 기간을 최소한으로 제한하는 기존 기업별 조사와 달리 이번에는 조사범위 폭을 넓혀 엄정하게 검증키로 했다. 공정거래법상 불공정거래, 사주의 횡령·배임 등 중대한 위법행위의 경우 검찰·공정거래위원회 등 유관기관에 통보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할 계획이다.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국세청이 대기업·대재산가, 고소득사업자, 역외탈세, 민생침해 탈세 사범 등으로부터 추징한 탈루 세금은 10조7000억원에 달한다.

김명준 국세청 조사국장은 “이들은 대기업과 달리 정기 순환조사와 기업 공시 의무에서 벗어나 있는 등 상대적으로 관리 사각지대에 놓인 점을 악용해 대기업 사주일가의 탈세 수법을 모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