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우리는 무엇을 꿈꾸는가

입력 2019-03-08 18:09

세계적인 투자금융기관인 골드만삭스는 2009년 이런 예측을 했습니다. 남북한 평화통일이 진행된다면 30년 뒤 통일 한국은 독일과 일본 경제를 추월하고 40년 뒤인 2050년엔 주요 23개국 중 제2위의 경제 대국에 올라선다는 것이었습니다.

정말 꿈같은 분석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통일 비용에 비교할 수 없는 ‘통일 대박’을 꿈꾸며 통일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꿈꿔야 할 통일국가는 이렇듯 경제적으로 ‘대박’난 나라일까요. 물론 통일 한반도에 부어주실 하나님의 축복을 거부해야 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다만 우리 그리스도인의 통일 비전 성취가 단지 ‘잘 먹고 잘사는 나라’에 있는 것이라면 한 번쯤 재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은 우리가 꿈꿔야 할 통일은 무엇인가에 대해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올해 100주년을 맞아 우리 믿음의 선조들이 앞장선 3·1 만세운동이 재조명받고 있습니다. 당시 2.2%에 불과했던 그리스도인이 2000만 겨레를 하나로 통일시켰습니다. 이로써 세계가 극동의 작은 나라인 한국을 주시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 믿음의 선조들이 가졌던 꿈도 단지 우리나라가 잘 먹고 잘사는 나라가 되는 것이었을까요.

모든 한국의 목회자가 본보기로 삼는 목회자가 있습니다. 순교자 주기철 목사입니다. 그분이 생명을 바쳐서라도 지키고 이루고자 했던 꿈이 단지 잘 먹고 잘사는 우리나라였을까요. 일본의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모진 고문과 생명의 위협을 감당하면서도 이루고자 했던 그분의 꿈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주기철 목사는 1944년 4월 21일 밤 48세 나이로 감옥에서 순교했습니다. 그리고 아들 주영전 전도사마저 50년 6·25전쟁 중 공산당에 의해 살해당하며 아버지가 걸었던 순교의 길을 이어갔습니다.

아버지가 죽음도 마다하지 않으며 순교의 길을 의연히 걷고, 아들도 그 길을 주저 없이 따를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주신 십자가의 비전 때문이었습니다. 그 십자가의 비전이 이들을 순교도 마다하지 않고 달려가게 만든 것입니다.

주기철 목사가 작시한 순교가 마지막 절의 가사 내용은 이렇습니다. “십자가에 고개턱이 제아무리 어려워도 주님 가신 길이오니 내가 어찌 못 가오리. 주님 제자 베드로는 거꾸로도 갔사오니 고생이라 못가오며 죽임이라 못 가오리.” 이 고백으로 그분의 순교 신앙엔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다”(14절)는 ‘십자가 신앙’이 자리를 잡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본문 12절을 보면 십자가 신앙의 반대편에 있는 신앙의 형태에 대해 설명합니다. “무릇 육체의 모양을 내려 하는 자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한 핍박을 면하려 한다”고 하고 “육체로 자랑하려 한다”(13절)고 지적합니다.

주기철 목사의 위대한 꿈은 성도 1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형교회를 세우는 게 아니었습니다. 100만 성도가 다니는 큰 교회 공동체를 만드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육체의 모양을 내려 하는 자’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위대한 꿈은 오로지 십자가뿐이었습니다.

다시 한번 묻습니다. 우리가 꿈꾸고 있는 통일은 어떻습니까. 우리 꿈의 밑바닥에는 무엇이 자리 잡고 있습니까.

주기철 목사가 품었던 꿈의 핵심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의 목회와 순교, 신앙의 기초를 이룬 것은 예수 그리스도이자 그분의 십자가 사랑이었습니다. 그 사랑 때문에 살아 일했고, 그 때문에 죽을 수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바로 선 하나님의 나라를 꿈꿔야 합니다. 나아가 통일 조국으로 세계 곳곳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세워나가는 ‘복음 강국’을 꿈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조기연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선교대학원 북한선교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