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병원의 모습이 달라지고 있다. 2019년을 6시간 앞둔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외래에서 진료 중이던 임세원 교수가 살해된 사건이 알려지며 많은 이들이 오가는 병원서 환자도 보호자도, 병원 직원도 무기력하게 폭력에 노출되는 것을 막겠다는 취지다.
이 가운데 가장 큰 변화는 무장한 보안요원들이 늘었다는 점이다. 과거 별다른 장비 없이 말끔한 양복차림이던 이들을 생각하면 오산이다. 기본적으로 칼이나 흉기로부터 몸을 보호할 방검복을 걸치고 손에는 무전기와 삼단봉을 들었다. 일부는 치안퇴치용으로 알려진 스프레이나 전기충격기, 수갑을 소지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 가스총이나 전기충격을 가할 수 있는 테이저건을 허리춤에 차고 병원 출입구나 응급실, 입원병동, 안내테스크, 심지어 검사실이나 외래 복도에서 위용을 과시한다.
보안요원들만 늘어난 것도 아니다. 눈에 잘 띄진 않지만 진료실 복도를 비롯해 병원 곳곳에 폐쇄회로(CCTV) 카메라가 설치됐고, 의사들의 진료책상 위에는 긴급 상황발생 시 외부의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호출용 비상벨이 자리하기 시작했다. 갑작스런 위협으로부터 빠른 회피가 가능하도록 별도의 출입구를 만들어 옆이나 뒤쪽에 위치한 진료실로 몸을 피할 수 있도록 하거나, 위해로부터 의료인이 충분히 몸을 뺄 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주기 위한 목적으로 진료책상의 위치나 모양을 변형하는 등의 고민도 하고 있었다.
몇몇 의료기관은 주변 경찰서와 업무협약을 맺고 비상벨이 울릴 경우 즉각 출동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하는가하면, 경찰의 순찰 동선에 의료기관이 중복 포함될 수 있도록 바꾸고 순찰 횟수도 늘려 사건을 방지하려는 노력들도 기울이고 있었다. 중앙보훈병원과 강동경희대병원, 강동성심병원의 경우 응급실에 강동경찰서와 연결된 스피커와 마이크, 녹음장치를 갖춰 폭행 등 긴급 상황발생 시 현장의 소리를 직접 경찰이 듣고 사태를 파악해 경고와 함께 출동을 결정하는 ‘안전병원 핫라인’을 개설해놓기도 했다.
시설과 인력의 변화만이 아닌 국민의 인식개선을 위한 캠페인 활동도 함께 이뤄지고 있다. 강북삼성병원은 故임세원 교수 사건 이후 ‘지금 응대하고 있는 직원은 당신의 딸, 당신의 손녀일 수 있습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의료현장에서는 간호사지만 한 집안에서는 외동딸이 폭언과 폭행에 노출될 수 있다고 감성을 자극하고 있다. 다른 곳에서도 ‘당신의 말과 행동, 누군가의 눈물을 흘리게 할 수 있습니다’라거나 ‘병원직원에 대한 폭언·폭행·협박 및 재물 손괴 행위 등을 엄하게 형사 처벌합니다’ 등의 문구가 걸려있다.
이와 관련 다소 공격적이거나 강성인 국가유공자들로 인해 폭력이나 폭행, 재물손괴 사건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중앙보훈병원 김봉석 원장대행은 “유리창이 깨지고 의사의 팔이 부러지고 피부가 찢어지는 일은 예사였다. 코드M이라는 폭언, 폭행사건에 대한 긴급호출이 별도로 있을 정도”라며 “병원이 깨끗해지고 규모가 커진 후 보안인력도 늘어나니 코드M 발생이 줄었다. 하지만 사건은 조심해도 터진다. 그나마 보훈병원은 국가의 예산지원으로 인력과 시설을 일부나마 개선했지만 대형 상급종합병원이 아닌 민간병원은 방비하기도 벅찰 것”이라고 우려했다.
오준엽 쿠키뉴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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