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전 대통령이 6일 보석을 허가받아 석방됐다. 구속된 지 349일 만이다. 그동안 구속 수감된 전직 대통령 가운데 보석으로 풀려난 경우는 그가 처음이다. 법원이 이례적으로 보석을 결정한 이유는 구속기간이 만료되는 다음 달 8일까지 재판을 마치기 어렵다고 판단해서다. 구속기간이 끝나면 자동으로 석방돼 마음껏 돌아다닐 수 있는데 그보다는 엄격한 조건 하에 석방하고 구속영장의 효력을 유지하는 게 더 낫다는 것이다.
서울고법 형사1부(부장판사 정준영)가 이 전 대통령의 보석을 허가한 결정적 이유는 2심 재판의 심리기간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지난달 법원 정기 인사로 재판부가 중간에 바뀌면서 재판 진행이 늦어졌다. 새로운 재판부 구성으로 지난달 27일 다시 공판준비 절차를 진행해야 했다. 구속 만료 시점까지 한 달여 안에 선고를 내리기는 불가능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 전 대통령이 보석을 청구하자 재판부는 구속기간에 구애받지 않고 충실한 심리를 하되 인신을 일정 제한하는 방법을 택했다. 구속에서 풀어주지만 서울 강남구 논현동 자택에만 머물러야 하고 병원 진료를 받을 때마다 법원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조건을 걸었다. 또 직계가족과 변호인을 제외하고는 연락할 수 없도록 했다. 보증금 10억원을 내라고도 명령했다. 재판부는 “구속기간 내 재판을 마무리하지 못해 석방되면 오히려 자유로운 불구속 상태가 된다”며 “그렇지만 조건부 석방을 할 경우 구속영장의 효력을 유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재경 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보석의 경우 보석을 취소하고 다시 구속할 수 있는 방법이 있어 보석 허가가 합리적인 선택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다른 사건에 비해 까다로운 제한을 둔 것은 ‘황제 보석’ 논란 등 보석 제도에 대한 부정적 여론도 의식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재판부는 “보석 제도가 공정하게 운영되고 있지 않다는 우리 사회의 비판을 수용했다”고 밝혔다.
706일째 구속 수감 중인 박근혜 전 대통령은 국정농단 사건 상고심 재판의 구속기간이 다음 달 16일 만료되지만 불법 공천개입 사건으로 징역 2년이 확정된 상태여서 풀려날 가능성은 없다. 노태우·전두환 전 대통령의 경우 1996년 보석 청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이듬해 말 특별사면으로 풀려났다.
재판부는 한편 이 전 대통령의 항소심에서 핵심 증인들이 정당한 사유 없이 불출석할 경우 구속영장을 발부하겠다고 밝혔다. 1심과 달리 이 전 대통령은 항소심에서 다수의 증인을 신청했다. 하지만 핵심 증인인 이학수 전 삼성그룹 부회장과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 등이 잇따라 불출석하며 재판이 공전 중이다.
이가현 기자 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