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최근 논란을 일으킨 유치원 3법을 비롯해 각종 현안이 생길 때마다 무턱대고 ‘패스트트랙’(안건의 신속처리)부터 지정하려는 행태가 잦아지고 있다. 국회법 85조에 규정된 패스트트랙은 여야가 법안에 합의하지 못해 심사가 지연될 경우 자동으로 본회의에 상정토록 한 예외적 제도지만, 상정에 걸리는 기간이 최장 330일이나 된다. 전문가들은 최후 수단인 패스트트랙에 대한 의존이 커지는 것은 ‘정치 실종’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6일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여야 간사 회동에서는 공직선거법 개정을 패스트트랙에 올리는 것을 두고 고성이 오갔다. 정의당 심상정 위원장과 민주당 김종민, 바른미래당 김성식 간사는 자유한국당이 선거제 개편에 대한 당론을 내놓지 않으면 패스트트랙이 불가피하다고 압박했다. 하지만 장제원 한국당 간사는 “선거제도를 여야 합의 없이 처리한 것은 권위주의 시대에나 있었던 일”이라며 격하게 반발했다.
하지만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선거제도 개편뿐 아니라 한국당과 처리를 놓고 대치 중인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 등 각종 개혁 입법도 패스트트랙에 같이 올리겠다는 입장이다. 여당은 한국당의 ‘묻지마 반대’ 탓에 패스트트랙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각종 법안을 패스트트랙에 올리더라도 추후 여야 협상을 통해 새로운 수정안을 만들고, 기간도 단축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한국당은 패스트트랙으로 여야 협상 자체가 어려워졌다고 반박하고 있다.
패스트트랙 지정이 확대되는 추세지만 그 실효성을 놓고선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패스트트랙의 한계는 이미 유치원 3법 처리 과정에서 드러났다. 지난해 12월 27일 국회 교육위원회는 유치원 3법을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했는데, 이후로는 여야가 법안을 논의조차 하지 않는 ‘역설’이 빚어졌다. 법안 처리의 빠른 경로라는 패스트트랙이 법안을 최대 330일간 표류하도록 방치하는 모순을 만들면서 ‘슬로트랙’ ‘1년 유예 트랙’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패스트트랙은 18대 국회 당시 국회선진화법의 일환으로 도입됐지만 19대 국회까지는 단 한 번도 이용되지 않은 ‘낯선’ 제도였다. 20대 국회에서도 2016년 ‘사회적참사법’에 적용된 것이 최초였다. 패스트트랙이 빈번하게 활용되는 것은 그만큼 ‘협상과 타협’이 실종됐다는 방증이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극단적 지지층의 눈치만 보는 정치 문화 탓에 대화와 타협을 할 경우 비판을 받게 된다”며 “타협 대신 일단 법안을 패스트트랙에 올리기 급급할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정치 부재가 패스트트랙을 부르고, 패스트트랙이 다시 정치 부재를 낳는 악순환을 우려했다. 김형준 명지대 교양학부 교수는 “패스트트랙에 일방적으로 올리면 (상대 당에서) ‘패스트트랙을 풀지 않으면 협상 안 하겠다’고 맞서면서 오히려 여야 대립이 장기화된다”고 지적했다. 법안을 빨리 처리하자는 취지가 오히려 ‘숙제’를 뒤로 미루게 하고, 그 과정에서 갈등이 증폭되는 부작용이 반복된다는 의미다.
임성수 신재희 김성훈 기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