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만든 ‘제로페이’가 외면당하고 있다. 은행권에서 제로페이의 월 결제금액이 2억원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상공인의 카드수수료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만들었지만 소비자는 물론 가맹점 반응마저 뜨뜻미지근하다. ‘제로페이 확산’이 지지부진하자 정부는 신용카드 소득공제율을 줄이고 제로페이에 소액후불 결제·교통카드 기능을 부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신용카드 대신 제로페이에 지원사격을 하겠다는 것이다.
6일 김종석 자유한국당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1월 은행권의 제로페이 결제건수는 8633건, 결제금액은 1억9949만원으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국내 신용·체크카드 결제금액(58조원)의 0.0003% 수준에 불과하다. 전체 제로페이 가맹점 수(4만6600여곳)로 따지면 한 달 동안 0.19건, 4278원이 결제된 셈이다. 네이버페이 등 간편결제사업자 4곳의 결제 실적을 제외한 수치라는 점을 감안해도 결제 수단에서 제로페이가 차지하는 비중은 극히 적은 것으로 추산된다. 제로페이는 소비자가 매장에 비치된 격자무늬 바코드(QR코드)를 스캔해 결제하는 서비스다. 네이버페이, 페이코 등 간편결제 애플리케이션이나 16개 은행 앱을 통해 이용할 수 있다. 결제 즉시 소비자의 은행 계좌에서 판매자 계좌로 돈이 이체된다.
1월의 제로페이 결제금액을 은행별로 보면 케이뱅크가 8798만원으로 가장 많았다. 제로페이와 연계된 결제시스템 ‘케뱅페이’에서 무이자로 50만원까지 쓸 수 있는 서비스인 ‘쇼핑머니 대출’이 인기를 끌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결제건수로는 우리은행이 3138건(4377만원)으로 가장 많았다. 신한은행(1807건, 2719만원)과 국민은행(1360건, 1560만원)이 뒤를 이었다.
제로페이는 소상공인의 결제 수수료를 0%대로 낮추겠다는 목표로 시작됐다. 신용카드를 통한 ‘외상 결제’ 일변도인 국내 결제시장의 흐름을 바꾸겠다는 구상이었다. 하지만 사실상 체크카드와 동일한 기능인데, 사용은 체크카드보다 불편하다는 점 등이 부각되면서 소비자 관심 밖에 머물고 있다.
이에 정부는 세제 혜택 등 소비자를 위한 각종 인센티브를 추가하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제로페이 소득공제율은 40%로 체크카드(30%)나 신용카드(15%)보다 높다. 여기에 정부는 신용카드의 소득공제 혜택을 축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신용카드의 혜택을 줄이고 제로페이에 힘을 실어주겠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금융 당국도 제로페이에 50만원 한도로 소액후불 결제 기능을 부여하고 교통카드 기능도 얹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다만 여론 반발이 변수다. 소비자가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게 아니라 신용카드 혜택을 줄이는 방식으로 진행되면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 김 의원은 “소비자들이 제로페이를 이용할 실익이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