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마이니치신문은 2009년 6월 14일자 1면을 통해 스위스 베른 공립학교에 다니던 시절의 16세 김정은(당시에는 김정운)의 모습을 공개했다. 우리가 아는 그 김정은. 농구선수 데니스 로드먼과 만화 ‘슬램덩크’를 좋아하고, (일부 언론에 따르면 병적으로) 경쟁심이 강하며, 수학을 잘하는 스위스 유학파. 그는 일본 언론의 손에 이끌려 얼결에 글로벌 무대에 데뷔했다.
그해 6월 일본 미디어에는 ‘김정은 열풍’이 불었다. TBS방송은 베른의 급우들과 찍은 2000년 무렵 김정은 사진을, 요미우리신문은 15세 전후 소년 김정은 모습을 연달아 보도했다. 보름 뒤에는 니혼TV가 13분짜리 동영상을 공개했다. 1998년 학교 행사에서 시큰둥한 표정으로 탬버린을 치는 김정은이 나온다. 니혼TV는 마카오에서 장남 김정남을 인터뷰했다. 후계구도를 놓고 억측이 난무하던 때였다. 김정남은 “아버지가 (김정은을) 아주 좋아한다”고 말했다.
차남 김정철의 모습을 잡아낸 것도 일본이었다. 후지TV는 영국 가수 에릭 클랩튼의 2006년 독일 콘서트 때, TBS방송은 2015년 영국 공연 때 김정철을 포착했다. 한국 언론의 자존심을 위해 덧붙이자면, 2011년 싱가포르에서는 한국 취재진도 김정철 촬영에 성공했다.
일본 언론의 대북 특종이라. 열거하자면 끝도 없다. 2017년 2월 김정남 암살사건 당시 후지TV는 사건 발생 6일 뒤인 19일 암살 현장인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공항의 CCTV 영상을 단독 입수했다. ‘2.33초’ 암살 순간이 여기 담겼다. 8개월 뒤 또 다른 CCTV가 공개됐다. 북한 국적자와 용의자들이 만나는 카페 영상이었다. 역시 후지TV 작품이다. 2001년에는 마이니치신문의 김정남 위조여권 밀입국 보도가 있었다. 가끔은 과욕이 초대형 오보로 이어졌다. 아사히TV는, 나중에 한국인 배모씨로 밝혀진 김정은 사진을 특종이라고 자랑했다가 망신을 당했고, 아사히신문은 김정일 국방위원장 3부자의 극비 방중을 보도한 뒤 중국 외교부로부터 ‘007 소설’이라는 조롱을 들었다. 하지만 비판을 하더라도 자아성찰이 먼저다. 한국 언론의 대북 보도는 공정했던가. 중요한 건 ‘지적질’이 아니라 ‘이해’다. 일본 언론은 어떻게 세기의 특종과 오보를 만들어왔는가. 장구한 투자의 역사를 들여다보는 노력이다.
되짚어보자. 모든 순간에 일본은 있었다. 북한의 로열패밀리가 김정남·김정철을 거쳐 김정은까지 긴 경쟁의 길을 통과할 때도, 김정은이 부상하던 2009년에도, ‘포스트 김정일 시대’가 확고히 윤곽을 드러낸 이후에도 그곳에는 항상 일본 미디어가 있었다. 가장 좋은 목에 앉아서. 누구보다 끈질기고 성실하게. 일본은 북한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한 외신기자의 말처럼 김정남 암살 때 가장 먼저 공항에 달려간 건 일본 기자들이었다. 한국 언론은, 아니 한국은 그들을 이길 수 있을까.
지난달 26일 새벽 3시30분 중국 난닝역 플랫폼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담배를 피우는 장면이 카메라에 포착됐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위해 베트남 하노이로 가는 길이었다. 크리스털 재떨이를 받쳐 든 동생 김여정 제1부부장, 그 옆에 선 리용호 외무상과 최선희 외무성 부상까지 수뇌부의 흥미로운 ‘1분30초’를 온 세계가 훔쳐봤다. 한국이 아니라 일본 TBS방송 크루의 도움으로. 중요한 건 이 대목이다.
화면 안의 북한에만 몰두할 일이 아니다. 카메라를 든 일본의 손에도 주목해야 한다. 김정은 동선 곳곳에 매복한 채 숨을 죽인 사람들, 결정적 순간을 기다리며 화면 밖에서 움직이는 힘. 한국은 일본을 놓치고 있는 건지 모른다. ‘하노이 실패’의 원인은 분명하지 않다. 선수는 많고, 변수는 더 많다. 긴 목록에 하나를 더 보태본다. 김정은의 움직임을 추적하고 기어이 카메라에 담아낸, 일본 언론의 열정과 그걸 가능하게 한 일본 사회의 집단 의지는 우리 짐작보다 훨씬 큰 역할을 했을 거다. 그들만의 조용한 집요함으로.
이영미 온라인뉴스부장 ym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