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좋은 군사로 무장하여 영적 부흥 이루라

입력 2019-03-07 00:02
주다산교회 치유축제에 참가한 성도들이 지난 1일 경기도 안성 사랑의교회 수양관에서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가자며 외치고 있다. 주다산교회 제공

이 시대는 탐욕과 중독의 시대다. 중세 수도원에서는 죄의 목록을 일곱 가지로 정하고 경건 훈련을 했다고 한다. 탐욕 교만 선망 분노 태만 탐심 욕정이다. 그중 탐욕은 죄악의 뿌리이다. 탐욕이 중독을 만들어 낸다. 필자는 친척 아이들을 데리고 중국에 단기선교 여행을 간 적이 있었다. 그런데 아이들이 스마트폰에 중독되다시피 했다. 아이들에게 스마트폰은 마치 생명줄 같았다. 한순간도 스마트폰을 떼놓지 못했다. 스마트폰이 없는 곳에서는 금단현상이 일어나곤 했다.

이런 현상은 아이들만의 문제일까. 수년 전 만 20세 이상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국내 사행산업 이용 실태 조사에 따르면 도박중독 유병율이 6.1%인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 성인 가운데 200만명이 도박중독일 수 있다는 의미다.

필자가 교회를 개척하고 난 후 결혼식에서 처음으로 주례를 했는데 그 가정이 마약으로 무너지고 말았다. 당시 교회는 목회적 돌봄 사역의 일환으로 “병든 자, 환난 당한 자, 마음이 원통한 자, 빚진 자 다 오시오” 하며 플래카드까지 내걸었는데 그 가정에선 치유와 회복을 볼 수 없었던 것이다.

당시 성도 중엔 조현병 환우도 있었다. 그는 수시로 중독 증상을 보였다. 여성도였는데 담임목사에게 병적으로 집착해 필자의 목회활동에 지장을 줄 정도였다. 그의 가족들도 함께 기도하며 회복하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교회생활을 할 수 없게 됐고 병원에 입원한 다음엔 교회를 떠나게 됐다.

어떤 성도는 충성된 일꾼이었다. 결혼적령기를 놓친 처녀였는데 한번은 기도원에 다녀온다고 갔다가 시한부 종말론자를 만나 사람이 완전히 바뀌었다. 그는 작은 개척교회를 뒤흔들어 놓았다. 개척교회는 치열한 영적 전투장 같았다.

어떻게 건강한 교회로 성장할 것인가. 필자는 로뎀나무 아래 쓰러진 엘리야 선지자와 같이 탈진을 경험하기도 했다. 그때 묵상했던 말씀은 잠언 24장 16절이었다.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말미암아 엎드러지느니라.” 목회적 돌봄 사역은 내 한계를 드러내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었다. 연단 과정이었지만 다음의 교훈을 얻었다.

첫째, 목회의 주인은 하나님이었다. 하나님을 더욱 의뢰하게 됐다. 그러자 치유와 회복이 나타났다. 둘째, 예수의 좋은 군사로 무장하는 제자도 목회를 지향하게 됐다. 무장한 그리스도의 제자를 세우는 데 목회 비전을 뒀다. 스파크 목회는 예수의 좋은 제자로 무장해 하나님 나라 운동을 감당하는 목회이다.

주다산교회 성도들이 지난해 3·1운동 기념대회를 갖는 모습. 주다산교회 제공

말씀의 능력으로 무장하라

헬라어로 ‘무장’이란 단어는 ‘카타르티조’이다. 영국의 세계적 성서신학자인 윌리엄 바클레이는 무장이란 말을 이렇게 언급했다. “‘조절하다’ ‘회복하다’ 등을 의미하며 주어진 목적을 위해 사람이나 어떤 것을 무장시키거나 제공하는 데 사용된다.” 이를 그리스도의 제자도에 적용한다면 에베소서 4장 12절에 나오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라는 말씀으로 살펴볼 수 있다.

성도를 무장시키기 위해서는 먼저 설교가 중요하다. 총신대 김창훈(설교학) 교수는 설교를 이렇게 정의했다. “(성령의 역사에 의존하거나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성경으로부터 하나님의 뜻을 발견해 그것을 이 시대 청중들의 신앙과 삶에 연결하고 효과적이며 설득력 있게 전달해 청중들의 신앙이 변화하도록 하는 것.”

필자는 설교의 가장 중요한 요소를 장 칼뱅의 말에서 찾을 수 있었다. “말씀과 성령의 확실성을 서로 결합하시어 하나님의 얼굴을 생각나게 하는 성령이 빛을 낼 때에만 비로소 완벽한 말씀의 종교가 우리 마음속에 거주하게 되는 관계이다.”

성도들을 말씀으로 무장시키기 위해서는 말씀의 심화학습이 필요하다. 주다산교회는 개척 때부터 지금까지 주일 설교를 ‘되나(되새기고 나누는) 말씀 연구’라고 부르는 한 장짜리 교재로 제작해 셀 모임 자료로 사용하고 있다.

현재 주일 낮예배 설교는 ‘되나 성경공부’로 만들어 가족셀 교재로 사용한다. 수요 낮예배 설교는 목·금요일 여성 사랑셀 교재로 사용한다. 주일 저녁설교는 ‘샬롬축복전도지’로 만든다. 이렇게 설교 내용을 되새기고 나누면 성도들은 설교 듣는 자세를 달리한다. 집중해서 듣게 된다.

‘체험성경’이라는 양육 교재에는 설교 듣기 훈련 과정도 있다. 설교 듣기 원칙은 이렇다. 교만한 마음을 내려놓으라. 내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라. 평소에 말씀을 많이 읽고 마음에 두라. 설교자와 설교를 위해 기도하라. 말씀에 끈질기게 붙어있으라. 아멘으로 화답하고 순종하라.

경건의 능력으로 무장하라

기독교 영성의 출발은 십자가 복음이다. 영성에 이르는 길은 은혜와 훈련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부르실 때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하셨다. 여기서 ‘되게 하리라’는 헬라어 ‘포이에소’로 ‘만들다’라는 뜻이다. 훈련과 무장이 그만큼 중요한 것이다.

주다산교회엔 역동적 훈련이 있다. 대부분의 성도가 간증의 주인공이다. 훈련의 기쁨을 경험했다는 것이다. A집사는 주다산교회에 처음 왔을 때 훈련을 받았는데 신선한 체험이라고 말했다. 다른 교회에서는 일 중심 교회생활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주다산교회에 와서는 편안하게 숨어 지내려 했는데 점차 훈련을 자원하게 됐다고 한다.

그리스도인의 훈련엔 두 가지 차원이 존재한다. 우선 하나님과의 수직적인 관계로서 내면적 영성 훈련이다. 겸손 온유 열정 기쁨의 훈련이 있다. 이 훈련은 예수님을 닮고 배우는 것이다. 그다음은 이웃을 향한 영성의 삶이다. 가난한 자를 돌보는 삶을 배운다.

기독교 초기 교회 성도들에 대해 당시 한 철학자는 이 같은 기록을 남겼다. “그들은 매우 친절하고 겸손하게 산다. 과부와 고아를 업신여기지 않았다. 나그네를 잘 대접했다. 메시아의 이름으로 투옥되면 석방을 위해 도왔다.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돕기 위해 금식기도회를 2~3일 했다.” 초기 신자들은 고난의 영성을 훈련했다. 이것은 말씀과 성령의 역사를 통해 경건의 능력을 받고 개발하는 것이다.

전도활동에 나선 주다산교회 성도들. 주다산교회 제공

신앙의 운동화로 무장하다

필자는 대학 시절 ‘천록’(天 )이란 이념 단체에서 학생운동을 했다. 백두산 천지의 천과 한라산 백록담의 록을 써서 천록이라 지었다. 통일운동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는 모임이었는데 필자는 조직부장을 거쳐 대표로 활동했다.

이후 하나님의 큰 은혜를 받고 운동권적 세계관을 포기했다. 그리고는 하나님의 소명을 받아 신학을 공부했다. 총신대 신학대학원에서는 원우회장을 하면서 ‘뉴 스파크 운동’(새로운 불씨 운동)을 일으키며 하나님나라 운동을 하게 됐다. 필자는 이를 목회에 적용했다. 즉 교회와 성도는 거룩한 운동 성향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데이비드 왓슨은 그의 유명한 책 ‘제자도’ 서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서구의 교회는 흙에 손을 묻히기를 싫어한다. 고상한 기독교를 추구하다가 교회가 쇠퇴하고 말았다. 공산주의는 목숨을 건 운동을 하고 있다. 어떻게 교회가 이길 수 있겠는가.” 교회는 하나님나라 운동을 위해 성도를 운동 요원으로 무장시키고 훈련해야 한다고 본다. 미국 뉴욕의 리디머교회를 설립한 팀 켈러 목사는 그의 책 ‘센터처치’에서 세 가지 축을 말했다. 복음축, 도시축, 운동축이다. 이 가운데 운동축에는 강력한 비전과 희생적 헌신, 보상 문화 형성, 너그러움, 새로운 아이디어와 지도자의 자발적 산출 등이 있다고 했다.

스파크 목회를 통해 예수님의 좋은 군사로 무장해가는 주다산교회 성도의 사례를 살펴보자. 선데이 크리스천이었던 고연진 집사는 경기도 화성 동탄으로 이사를 오면서 2년 전 교회에 나오게 됐다. 고 집사는 원래 탁월한 요가 강사로 활동했다. 요가 분야에 비전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요가를 더 깊이 들어가니 뉴에이지와 신비주의를 접하게 됐다. 그러던 중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영적으로 무장하면서 요가의 세계와 자연히 멀어졌다. 그리고 강사생활을 그만두고 새벽기도의 사람이 되었다. 고 집사는 스파크 양육체계를 통해 그리스도의 제자가 됐다. 그는 전도팀의 일원으로서 날마다 전도에 나선다. 지금은 하나님의 부요함 속에 살고 있다.

글=권순웅 주다산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