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이 2016년 당시 국민의당 소속 국회의원 청탁을 받고 ‘국민의당 총선 홍보비 리베이트 의혹 사건’의 재판 관련 정보를 빼돌린 사실이 5일 드러났다. 검찰은 이 전 실장을 포함해 전·현직 법관 10명을 이날 재판에 넘겼다. 전·현직 대법관은 기소 대상에서 모두 제외됐지만 권순일 대법관은 대법원에 비위 법관으로 통보됐다.
서울중앙지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수사단(단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이 전 실장,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 임성근 전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 등 전 현직 법관 10명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공무상비밀누설죄 등으로 불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검찰은 권 대법관 등 66명의 사법농단 관련 비위사실과 증거자료를 대법원에 통보했다.
이 전 실장은 2016년 당시 서울서부지법에서 진행 중이던 박선숙, 김수민 국민의당 의원의 공직선거법·정치자금법 위반 혐의 재판 정보를 당시 같은 당 소속 의원의 요청을 받고 유출한 혐의(직권남용) 등을 받고 있다. 그는 2016년 10~11월 서부지법 소속 판사를 시켜 “피고인 측 변명이 완전히 터무니없어 보이진 않는다”는 식의 재판부의 유무죄 심증 등을 파악한 뒤 이를 국민의당 의원에게 전달했다고 한다. 이 전 실장에게 청탁한 인물로 의심받는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은 “저와는 무관하다”고 의혹을 부인했다.
이규진 전 상임위원은 2015년 2월~2017년 4월 헌법재판소 파견 법관을 통해 헌재 기밀정보 수백건을 수집한 혐의를 받고 있다. 임성근 전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는 ‘세월호 7시간’ 재판, 오승환·임창용 프로야구 선수의 재판 등에 개입한 혐의다.
신광렬 전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는 2016년 ‘정운호 게이트’ 사건이 법관 비리 수사로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검찰 수사기록을 유출한 혐의(공무상비밀누설)를 받는다. 당시 영장전담이던 성창호·조의연 부장판사도 신 전 부장판사에게 수사기록을 넘긴 혐의로 기소됐다. 이 중 성 부장판사는 지난 1월 김경수 경남지사에게 징역 2년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한 인물이다. 여권은 ‘사법농단 연루 법관의 보복성 판결’이라며 그를 비판해 왔다.
차한성 전 대법관과 권순일 대법관은 ‘양승태 대법원’에서 각각 행정처장, 행정처 차장으로 근무하며 ‘강제징용 소송’ 재판 거래 및 ‘법관 블랙리스트’ 작성에 연루됐지만 기소 명단에서 빠졌다. 검찰 관계자는 “이들은 사법농단 범행이 구체화되고 현실화된 수순에 이르기 전에 퇴직하거나 보직이동을 했다”며 “현 단계에서는 기소 대상에 포함시키는 데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다만 검찰은 대법원에 통보한 비위 판사 명단에 권 대법관을 포함시켰다. 법적 책임을 물을 수준은 아니지만 비위 사실이 있다고 본 것이다.
대법원 윤리감사관실은 검찰에서 받은 자료를 바탕으로 비위 법관들을 조사한 뒤 징계 청구 여부를 검토하게 된다. 권 대법관에 대해서는 관계 법령에 대법관을 징계할 수 있다는 명시적 근거가 없어 징계 여부에 대한 법리 검토를 할 계획이다. 법관징계법상 법관 징계 시효가 3년이라는 점도 고민거리다. 권 대법관의 비위 행위 대부분은 그가 차장으로 있던 2012~2014년 저질러졌다. 시효 문제로 징계가 불가능할 수 있다. 서기호 변호사는 “징계 시효가 지났지만 비위 정도가 심각한 법관은 국회에서 적극적으로 탄핵을 추진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구자창 이가현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