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교령 안 내리고 공사장은 정상 가동… 대책없는 잿빛 일상

입력 2019-03-06 04:01
서울 성북구 숭덕초등학교 학생들이 5일 빠짐없이 마스크를 쓴 채 하교하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이날 서울에 초미세먼지 경보가 발령됨에 따라 모든 학교에 실외수업을 하지 말 것과 학사일정 조정 검토를 지시했다. 최현규 기자

전국 대부분 지역이 최악의 미세먼지에 갇힌 5일, 시민들은 고통 속에 일상을 이어갔다. 학교를 찾은 어린이들은 목이 아프다고 호소했고 자영업자들은 떨어지는 매출에 울상을 지었다. 정부가 연일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를 시행해도 미세먼지는 기세를 더하고 있어 정책 실효성에 의구심이 확산되는 분위기다. 보다 본질적인 대책을 내놓으라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미세먼지가 바꿔놓은 씁쓸한 일상

이날 영남권 일부를 제외한 전국 대부분 지역에서 미세먼지(PM10)와 초미세먼지(PM2.5) 하루 최고치 농도가 2015년 공식 관측 이래 최악 수준을 기록했다.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은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닷새째 이어졌다.

시민들은 초유의 미세먼지 공격에 큰 타격을 입었다고 호소했다. 특히 어린 자녀를 둔 학부모들의 불만이 컸다. 지난달 중순 시행된 미세먼지특별법에 따라 각 지방자치단체장은 비상저감조치가 발동될 경우 휴업을 권고할 수 있지만 이날 전국 학교 중 휴업 조치가 내려진 곳은 없었다.

딸이 서울 영등포구의 한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에 다니는 박모(33)씨는 “4일 개학해 유치원을 다녀온 뒤 아이가 목이 아프다고 했다”며 “유치원에 공기정화시설도 충분치 않은 상황이라 아이의 건강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정작 휴교령이 내려져도 걱정이라는 의견도 많았다. 서울 용산구 A초등학교 2학년생 아들을 준 이모(39)씨는 “아이가 학교를 오가는 길에도 미세먼지에 노출되니 걱정된다”면서도 “하지만 정말 휴교령이 내려져도 맞벌이 부부의 경우 휴가를 내서 아이를 볼 수 있는 상황도 아니라 마냥 환영할 수도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시민들이 바깥 나들이를 자제하면서 자영업자들은 직격탄을 맞았다. 서울 종로구에서 15년째 한식당을 운영 중인 김모(66)씨는 “연휴 기간인 1일부터 3일까지 쉬지 않고 가게 문을 열어뒀지만 손님은 현저하게 줄었다”며 “매출도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30% 이상 줄었다”고 하소연했다.

서울 중구에서 노점상을 운영 중인 이모(46)씨는 “평소에는 인근 백화점 등에서 쇼핑을 하고 노점상들이 있는 거리로 지나가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최근 며칠 사이 발길이 뚝 끊어졌다”며 “매출도 평소보다 20~30%나 줄었다”고 말했다.

미세먼지 장기화 조짐에 자구책 마련에 나선 시민들의 대응도 눈길을 끌고 있다. 약국에는 미세먼지 차단 성능이 높은 마스크를 구매하려는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서울 성북구 종암시장 내 한 약국의 약사 이모씨는 “일주일 전에 비해 마스크가 10배 넘게 팔리고 있다”며 “호흡기 질환 환자도 열흘 사이 2배 넘게 많아졌다”고 말했다.

온라인 육아 커뮤니티인 ‘맘 카페’에는 미세먼지 대응법을 공유하는 글이 넘쳐났다. 성능 좋은 공기청정기에 관한 정보가 공유됐고 청소법 등 대응법도 등장했다. 한 맘 카페 회원은 “진공청소기보다 물걸레를 사용하는 것이 미세먼지 발생을 줄일 수 있고 외출 시 착용한 옷은 귀가 후 곧바로 세탁하거나 베란다에 따로 보관해야 미세먼지 유입을 막을 수 있다고 한다”고 알렸다. 다섯 살 아들을 둔 주부 박모(40)씨는 “아이와 3일째 집 밖에 나가지 않고 있다”며 “부득이한 외출을 대비해 미세먼지 차단용 마스크를 50여개 구비해뒀다”고 말했다.

비상저감조치 위반사례 허다해

이날 서울시는 비상저감조치의 일환으로 행정·공공기관의 주차장을 전면 폐쇄(06~21시)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서울시청 지하 4층 주차장에는 단속 대상에서 제외된 장애인차량, 소방 등 특수공용목적 자동차 등을 빼고 일반 차량 16대가 주차돼 있었다. 이 차량들이 주차장 안팎을 오가는 모습도 목격됐다.

또 공공기관은 차량 2부제를 실시했지만 위반한 경우를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차량번호 끝자리가 홀수인 차량만 운행이 가능했지만 정부서울청사에 주차된 100여대의 차량 중 30대 이상은 짝수번호 차량이었다. 정부청사 관리과 관계자는 “차량 2부제 위반차량을 체크하고 있다”면서 “청사에서 열린 회의에 늦거나 공무가 급한 이들이 어쩔 수 없이 차를 몰고 온 경우가 있어 위반차량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민간 건설현장 등에 공사시간 단축 및 비산먼지 발생 억제를 위해 살수량을 늘리고 방진덮개 복포를 사용할 것을 권했지만 이를 준수하지 않는 곳도 많았다. 서울 동대문구의 한 복합시설 공사현장에서 만난 김모(61)씨는 “미세먼지가 심해도 근무시간이 줄어들지 않아 평소처럼 일을 한다”며 “정부에서 규제한다고 해도 먹고 살려면 먼지를 먹더라도 일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서울 동작구의 한 건설현장 인부 한모씨는 “작업자들에게 방진마스크를 제공해주겠다는 말은 들었지만 아직까지 받지 못했다”며 “인부 대다수가 방진 필터가 없는 일반적인 미세먼지 마스크를 쓰고 있다”고 말했다.

“미봉책 벗어나 본질적 문제 해결해야”

기상예보업체 케이웨더에 따르면 6일 국내 미세먼지 농도는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이 ‘나쁨’ 이상을 기록할 전망이다. 7일 대기 순환이 원활해지면서 잠시 ‘보통’ 수준으로 돌아오지만 주말에는 또다시 답답해진다. 케이웨더는 8일과 9일 서울 지역 미세먼지 수치가 또다시 ‘나쁨’ 수준을 보일 것으로 내다봤다. 상황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시민들은 본질적 대책을 정부에 요구했다.

지난 1~5일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는 미세먼지 관련 항의 글이 1314건 올라왔다. 정부와 각 시·도의 미온적 대처에 항의하는 청원이 대부분이다. 미세먼지 발생의 주된 원인 제공자로 지목되는 중국에 더 적극적으로 입장을 표명해야 한다는 주장도 눈에 띈다.

한 청원인은 “정부는 보여주기식 회의만 할 뿐 제대로 된 대책 하나를 내놓은 적이 없다”며 “가장 효과적인 대책은 중국에 (저감)대책을 세우라고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다른 청원인은 “중국으로부터 유입되는 미세먼지·초미세먼지의 농도를 측정해서 데이터화한 후 중국 측에 제시해 책임지게 하고 해결책과 피해보상을 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사야 이동환 김용현 박세원 기자 Isaia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