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의 ‘백기 투항’은 투쟁 동력 상실에 따른 불가피한 선택으로 받아들여진다. 한유총은 앞으로 유치원 3법 저지 등 대정부 투쟁은커녕 공중분해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몰릴 전망이다.
한유총의 아킬레스건은 서울시교육청이 쥐고 있다. 사단법인인 한유총의 설립허가 권한은 서울교육청이 갖고 있다. 서울교육청은 비록 한유총이 하루 만에 개학 연기 투쟁을 접었어도 예정대로 법인 설립허가 취소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4일 밝혔다. 조희연 서울교육감은 5일 기자회견을 열고 설립허가 취소를 발표할 예정이다. 불법 행위를 벌여 이미 학부모 피해가 발생했고 사회적 혼란을 야기한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다. 서울교육청 관계자는 “어제(3일)에만 개학 연기 방침을 철회했어도 취소 절차에 들어가진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 당국에 따르면 설립허가 취소가 확정되면 한유총은 임의단체가 된다. 계모임이나 동호회와 다를 게 없어진다. 문제는 한유총 조직을 지탱해 주는 회비 징수다. 현재는 법인이기 때문에 회원 유치원으로부터 회비를 걷을 수 있었다. 회원 유치원들은 유치원 회계에서 회비를 지불할 수 있었다. 설립허가 취소 시 원장이 개인 돈으로 회비를 내야 한다. 남은 재산은 한유총 정관에 따라 국가로 귀속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교육 당국과 정책 협의를 하는 ‘파트너’ 지위도 상실하게 된다. 교육 당국은 설립허가 취소 시 한유총 조직은 와해될 것으로 내다본다.
서울교육청이 설립허가 취소를 결정하면 청문 절차가 남는다. 한유총에 소명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서울교육청은 청문 절차를 거쳐 설립허가 취소를 확정한다. 이럴 경우 한유총은 소송에 나설 전망이다. 한유총은 법원에 서울교육청의 설립허가 취소 결정의 효력을 정지해 달라는 가처분신청을 낼 가능성이 높다. 만약 법원이 가처분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법인 지위를 잃어버린 상태에서 소송이 진행된다.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는 것이다. 한유총이 개학 연기 투쟁을 조기에 포기한 배경 가운데 하나로 향후 진행될 법정 다툼에서 정상참작이라도 받아 조직이 와해되는 상황을 모면해보려는 움직임이란 분석이 나온다.
한유총은 고립무원 상태다. 특히 투쟁 대오가 무너진 점은 뼈아픈 대목이다. ‘유치원 대란’이 벌어지면 유아교육 현장의 고통을 지렛대 삼아 정부와 협상하려던 전략이었다. 그러나 학부모와 여론, 정부의 압박에 무용지물이 됐다. 한유총 관계자는 “국가의 협박에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교육청 장학사와 경찰 등) 3~6명이 몰려다니며 원장들을 실시간으로 협박했다. 국가 폭력이나 다름 없었다”라고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원아와 학부모를 볼모로 벌인 무리한 대정부 투쟁의 역풍은 상당할 전망이다. 공정거래위원회와 국세청, 경찰 등의 칼날이 오더라도 하소연할 곳이 없다. 학부모들이 분노했기 때문에 과거처럼 야당의 지원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반면 정부의 사립유치원 개혁은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국가관리회계시스템 에듀파인 도입과 유치원 3법 국회 논의도 속도를 낼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도경 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