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재 중시 ‘글로벌 두산’ 기틀 잡은 리더

입력 2019-03-04 20:05
고(故) 박용곤 두산그룹 명예회장이 1996년 8월 두산그룹 창업 100주년 축하 리셉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두산그룹 제공

“인재가 두산의 미래를 만드는 힘이다.”

인재를 중시한 경영으로 ‘글로벌 두산’의 기틀을 마련한 박용곤 두산그룹 명예회장이 지난 3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7세.

1932년 고(故) 박두병 두산그룹 초대회장의 6남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박 명예회장은 6·25전쟁이 한창이던 51년 해군에 자원 입대해 참전용사로 활약했다. 그는 군 제대 후 미 워싱턴대에서 경영학을 공부하고 귀국한 뒤 60년 한국산업은행에 공채로 입사했다. “남의 밑에 가서 남의 밥을 먹어야 노고의 귀중함을 알 것이요, 장차 아랫사람의 심경을 이해할 것”이라고 강조한 선친의 뜻에 따른 것이었다.

두산그룹에 발을 들인 건 63년 동양맥주의 사원으로 입사하면서다. 이후 한양식품 대표, 동양맥주 대표, 두산산업 대표 등을 거친 뒤 81년 두산그룹 회장 자리에 올랐다.

박 명예회장은 집에서나 회사에서나 모든 결정의 중심에 있었지만 좀처럼 먼저 입을 열지 않아 ‘침묵의 거인’으로 불렸다. 고인은 상대방의 말을 끝까지 경청한 뒤 자신의 뜻을 짧고 간결하게 전했다. 사업상 큰 결단을 내려야 하는 순간에도 그는 실무진의 의견을 먼저 듣고 나서야 입을 열어 방향을 정했다고 한다.

고인은 인화(人和)를 강조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인화로 뭉쳐 개개인의 능력을 집약할 때 자기실현의 발판이 마련되고, 여기에서 기업 성장의 원동력이 나온다” “‘인화’란 ‘공평’이 전제돼야 하고, ‘공평’이란 획일적 대우가 아닌 능력과 업적에 따라 신상필벌이 행해지는 것” 등의 생전 발언은 인화, 인재에 대한 박 명예회장의 신조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는 ‘모든 사원이 일생을 걸어도 후회 없는 직장이 되도록 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두산그룹 회장 재임 시 박 명예회장은 국내 기업 처음으로 연봉제를 도입했다. 94년에는 직원들에게 유럽 배낭여행 기회를 제공하고 96년에는 토요 격주휴무 제도를 시작했다. 여름휴가와 별도의 리프레시 휴가를 실시하기도 했다. 창업 100주년을 한 해 앞둔 95년에는 경영위기 타개를 위해 당시 주력이던 식음료 사업 비중을 낮추면서 33개에 이르던 계열사 수를 20개사로 재편하는 등 체질 개선작업을 주도했다.

유족으로는 아들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과 박지원 두산중공업 회장, 딸 박혜원 두산매거진 부회장 등 2남1녀가 있다. 빈소는 5일 오후 2시부터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진다. 장례는 가족장으로 치러지며 발인과 영결식은 7일, 장지는 경기도 광주 선영이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