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성경, 개역개정판 성경 저작권 침해”

입력 2019-03-05 00:02
한국성경공회가 출간한 ‘바른성경’이 대한성서공회의 ‘개역개정판’ 성경 저작권을 침해했다는 판결이 나왔다. 법원이 성경의 번역본도 저작권 보호를 받는 창작물에 해당한다고 인정한 것이다. 이번 판결이 확정되면 공예배에선 더 이상 바른성경을 쓸 수 없게 된다는 점에서 귀추가 주목된다.

한국성경공회는 대한성서공회의 개역개정판 성경의 신학적 노선에 반발해 자체 번역을 시작했다. 1999년부터 신구약 학자 및 국문학자 등 40명이 참여해 2008년 9월 ‘하나님의 말씀 바른성경’을 출간했다.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개혁 교단이 이를 예배용 성경으로 채택했다. 예장합동에서도 강단용으로 사용해 달라는 헌의안이 총회에 올라왔으나 기각됐다.

대한성서공회는 예장합동으로부터 개역개정판과 바른성경의 차이점에 대한 공문을 접수해 검토하면서 바른성경의 표절을 인지했다. 2014년 7월 한국성경공회와 발행인 김태윤이 저작권을 침해했다며 1억원대의 손해 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한국성경공회는 개역개정판은 개역한글판에 의거해 맞춤법, 어휘 등을 수정 변경한 것이라 저작권 보호를 받는 저작물로 볼 수 없다며 맞섰다.

재판은 5년 넘게 진행됐고 서울중앙지법 민사26부(부장판사 박상구)는 최근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개역개정판은 개역한글판을 기초로, 새로운 저작물이라 볼 수 있을 정도의 수정·증감을 가해 새로운 창작성을 부여한 저작물로 저작권법의 보호 대상”이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성경 번역에는 특정 단어, 표현, 구문에 대한 번역자의 특수한 판단이 가미되기 때문에 기존 번역의 제한적 개정이 아닌 새로운 번역을 목표로 할 경우 같은 본문이라도 번역마다 문장 구조, 어순, 어휘 선택 등에서 다양한 차이가 발생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부연했다.

재판부는 이 과정에서 양측의 동의를 얻어 구약 500구절, 신약 200구절에 대한 표절 감정을 실시했다. 그 결과 바른성경과 개역개정판 사이에 실질적 유사성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개역개정판을 이용하지 않고서는 존재하기 어려운, 현저한 유사성이 바른성경에 나타나고 우연히 존재하기 어려운 공통의 오류도 나타나는 점 등에 비춰보면 바른성경은 개역개정판에 의거해 작성됐음을 넉넉히 알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구체적인 사례로 에스라 8장 29절 ‘우두머리’의 해당 범위를 잘못 표현한 구절을 바른성경이 그대로 답습하고 있음을 제시했다.

다만 재판부는 두 단체가 수익이 아니라 성경배포 및 선교를 목표로 한다는 점, 지난해까지 1000만부 이상 판매된 개역개정과 달리 바른성경의 판매부수는 4만8200여부에 그쳤다는 점 등을 감안해 손해배상 액수를 1000만원으로 한정했다.

이번 판결이 확정되면 바른성경을 복제 제작 반포 판매 전시 소지해선 안 된다. 사무실 공장 창고 판매점포에 보관 전시 진열하고 있는 제품도 모두 폐기해야 한다. 일부 교회가 바른성경을 강단용으로 사용하는 것에도 제동이 걸린다.

대한성서공회 호재민 총무는 4일 “이번 판결을 계기로 개역개정판을 조금 다듬어 성경을 발간하며 독자들과 한국교회에 혼란을 불러오는 일이 더 이상 없길 바란다”며 “성경 번역과 보급을 책임진 한국교회의 연합기관으로서 대한성서공회는 성경의 공번역과 보급에 더욱 충실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