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 아버지 회상

입력 2019-03-05 00:01

얼마 전 선친 탁명환 소장의 25주기 추모예식이 있었다. 1994년 2월 19일 괴한의 피습을 받아 하나님의 품에 안기셨으니 올해로 만 25년이 됐다. 미처 깨닫지 못했던 당혹스러운 사실은 내가 선친이 돌아가신 그 나이가 됐다는 사실이다. 추모예식을 준비하던 어느 날 아침, 어머니와 아내를 보며 문득 선친이 돌아가셨을 때 어머니는 참 젊으셨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선친은 누군가의 아들이었고 남편이었으며 아버지셨다. 나는 선친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통해 종교적 이유로 누군가의 생명을 빼앗는 일은 어떤 경우에도 합리화될 수 없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누군가를 죽이는 일을 어떻게 성전(聖戰)이라 부를 수 있으며 자신의 생명을 스스로 파멸시키면서까지 무고한 이들의 생명을 빼앗는 일을 어떻게 순교(殉敎)라 할 수 있을까. 이는 사랑과 자비와 평화의 종교적 가치를 왜곡하는 고상한 자기합리화일 뿐이다.

이단 문제는 날카로운 교리적 분석의 눈이 아니라 애통해하는 피해자의 눈을 통해 바라봐야 한다는 소중한 교훈도 선친의 죽음을 통해 배웠다. 선친이 별세하신 후 2~3년 동안 나는 ‘아버지’라는 단어를 차마 꺼내지 못할 정도로 마음의 병을 심하게 앓았다. 당시 아버지라는 단어는 내 입 밖으로 나오기 힘든 금기어였다. 그래서인지 가족을 빼앗긴 이단 피해자들을 만날 때면 물에 젖은 스펀지처럼 동병상련의 감정에 쉽게 빠져버리곤 했다.

선친의 죽음과 함께 우리 삼형제는 호랑이 등에 올라타고 말았다. 선친이 남긴 일을 마무리하는 것이 삶의 우선순위가 돼버렸다. 다행히 힘들어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선친에 대한 사랑과 존경의 마음이 우리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선친이 남긴 일을 마무리하기로 한 후, 세 가지 소망이 있었는데 다행히 그중 두 가지는 마무리된 것 같다.

하나는 2009년 선친 15주기 추모예식을 맞아 자료집을 발간한 것이다. ‘사료 한국의 신흥종교: 탁명환의 기독교계 신흥종교운동 연구’라는 제목으로, 선친이 직접 발로 뛰며 모은 수백 상자 분량의 관련 자료를 정리한 700여쪽에 이르는 자료집이다. 일제강점기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기독교계 신흥종교운동 현황을 사진과 문서로 접근할 수 있는 자료집이다.

다른 하나는 최근 선친 25주기 추모예식을 계기로 선친이 쓰신 23편의 저서와 100여편의 논문을 PDF 파일로 만들어 수록한 디지털자료집을 낸 것이다. 이제는 관심 있는 연구자나 목회자, 신자 누구든 한국 이단 연구의 선구자인 고 탁명환 소장의 저술들에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앞으로는 부디 선친의 연구 결과물에 대한 무분별한 복제와 도용이 사라지고 정직한 출처 인용이 이뤄지기를 바란다.

남은 한 가지 과제는 선친이 모은, 사료적 가치가 있는 동영상과 음성 자료를 정리해 멀티미디어 자료집을 제작하는 것이다. 월간 ‘현대종교’ 자료실에는 수많은 기독교계 신흥종교운동들의 생생한 현장이 담긴 비디오테이프와 카세트테이프, CD 자료들이 있다. 자료보관 환경이 열악해 디지털 자료로 변환하는 작업이 시급하다. 시간과 비용 문제로 아직 엄두를 못 내는 형편이지만 몇 년이 걸리든 마무리해야 하는 마지막 미션이다. 이를 통해 탁명환 소장의 ‘한국 기독교계 신흥종교운동’과 ‘기독교이단’ 연구의 소중한 유산들이 후속 연구를 위해 역사에 남겨지기를 바란다.

역사는 마치 자동차를 운전하면서 사이드미러를 보는 것과 같다. 사이드미러를 보는 이유는 뒤로 질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목적지에 안전하게 도달하기 위해서다. 지나온 길과 주변을 돌아보아야 안전하게 차선 변경을 할 수 있다. 삶의 여정도 다르지 않아 보인다.

사이드미러에는 보일 듯 말 듯 ‘사물이 거울에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음’이라고 적혀 있다. 이단 사이비가 판치는 세상, 그래서인지 25년이 흐른 선친의 이야기가 아직도 잊히지 않은 채, 흥미로운 사회적 이슈가 되기도 하고 때로 악의적으로 편집돼 회자되기도 한다.

탁지일 (부산장신대 교수·현대종교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