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의 무기한 개학 연기 카드는 사회적 충격과 혼란이 극대화되는 새 학기 초반을 노려 협상력을 끌어올리려는 전략으로 분석된다. 정부를 협상 테이블로 끌어와 유치원 개혁에 제동을 걸어보려는 의도란 것이다. 정부와 여론의 압박에도 초강수를 둘 수 있었던 배경은 지난달 25일 국회 앞 궐기대회에 예상보다 많은 인원이 모여 강경파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교육부 관계자는 3일 “이렇게까지 집단행동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가장 나쁜 상황을 가정해 대응책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연휴 시작 시점인 28일 한유총의 기습적인 개학 연기 발표에 상당히 곤혹스러운 표정이다.
정부는 상황을 낙관하고 있었다. 한유총 내부 강온파 대립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에 지난달 25일 궐기 대회 이후에는 지리멸렬해질 것으로 기대했다. 집회 참석자도 5000~7000명 수준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한유총 추산 3만명, 경찰 추산 1만1000명이 집결하고 자유한국당 등 야당 의원들이 집회에 나서 한유총에 힘을 실어줬다. 자유한국당이 정부와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이 추진한 이른바 ‘유치원 3법’에 제동을 걸어놓고 일부 의원들이 집회에까지 참석하자 한유총 강경파들이 자신감을 회복하는 계기가 됐다는 관측이 나온다.
한유총은 집회에서 결속력을 확인하고 ‘집단행동 엄포→학부모 불안·고통→정부 부담→개혁 후퇴’란 공식을 다시 끄집어낸 것으로 보인다. 이 단체는 과거에도 이런 방식으로 정부를 압박했고 성과를 거뒀다. 특히 시간이 흐를수록 학부모의 피로감이 정부에 대한 불만으로 옮겨가기 십상이라는 점도 한유총의 노림수로 보인다.
이를 통해 정부가 협상 테이블에 앉으면 원전 문제나 대입제도처럼 수개월씩 소요되는 공론화 프로세스를 돌려 유치원 개혁 속도를 지연해 보려는 의도가 깔렸다는 지적이다. 한유총은 3일 기자회견에서 “입법 중인 시행령 개정을 잠시 유보하고, 교육부와 학부모 그리고 운영의 자율성에 대해 사회적 공론화 과정을 통해 합리적 방안을 도출하자”고 제의했다.
법정 공방도 해볼 만하다는 판단도 깔려 있어 보인다. 교육부가 추진하고 있는 유아교육법 시행령 개정안은 국가관리 회계시스템 에듀파인 의무화와 사립유치원 폐원 시 학부모 3분의 2 동의 의무화 등을 담고 있다. 한유총은 이 개정안이 사유재산을 인정하지 않아 위헌이라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문 닫고 싶은 원장에게 아이들을 억지로 보내는 게 교육부가 바라는 교육인가”란 주장도 펴고 있다.
한유총은 지난해 사립유치원 비리 사태 이후 다양한 방식으로 여론전을 펴왔다. 눈물로 감정에 호소했고, 단체로 검정색 옷으로 맞춰 입고 위력 시위도 벌였으며, 교육부에 반박하는 내용을 SNS에 홍보하기도 했으나 전혀 먹혀들지 않았다. 심지어 해묵은 색깔론까지 끄집어냈지만 조롱거리만 됐다. 일부 사립유치원에서는 “어차피 일반 국민의 지지는 받기 어렵다. 더 이상 눈치 보지 말고 이제 힘을 보여주자”란 강경한 목소리가 지난해부터 고개를 들었다. 이도경 기자 yido@kmib.co.kr
“어차피 악당” 바닥 친 여론에 한유총, 개학연기 초강수
입력 2019-03-04 0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