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농단 정점’ 양승태 보석 인용될까… 길어지는 법원의 고심

입력 2019-03-04 04:02
양승태 전 대법원장. 뉴시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조건부 석방(보석) 인용 여부를 두고 법원의 고심이 길어지고 있다. 형사소송규칙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보석을 청구한 때로부터 7일 안에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훈시 규정에 불과해 강제력은 없다. 재판부 재량에 따라 때로는 수개월이 걸리기도 한다. 법원은 지난달 26일 양 전 대법원장의 보석 청구에 관한 심문 기일을 진행한 이후 3일까지 결론을 내리지 않고 있다.

오는 6일 보석 여부가 결정되는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1월 29일 보석을 청구했다. 이 전 대통령의 항소심 재판부는 그로부터 17일 만인 지난달 15일 보석 심문 기일을 열었다. 심문 절차 이후 결과가 나오는 데까지 19일이 걸린 셈이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경우 4개월이 걸렸다. 그는 항소심이 진행 중이던 지난해 6월 보석을 청구했고 법원은 같은 해 10월 이를 기각했다. 박근혜정부에서 보수단체를 불법 지원한 ‘화이트리스트’ 사건으로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허현준 전 청와대 행정관도 재판 중이던 2017년 12월 보석을 청구했지만 지난해 2월에야 기각 결정됐다.

양 전 대법원장 사건은 사안이 중대한 만큼 적지 않은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그는 통상의 ‘병 보석’이 아닌 ‘피고인 방어권’에 초점을 두면서 불구속 재판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어 결과를 더욱 예상할 수 없다는 관측이 나온다.

법조계 일각은 전례 없이 방대한 공소사실에 주목하면서 재판부가 보석 청구를 받아들일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한다. 양 전 대법원장의 공소장은 296쪽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의 공소장(155쪽)과 이 전 대통령의 공소장(84쪽)의 2~3배 분량이다. 양 전 대법원장이 법률전문가인 만큼 피고인 스스로 재판 전략을 세울 수 있다는 점도 재판부 판단에 어떻게 작용할지 주목된다.

재경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방대한 기록과 물리적 시간 사이에서 변론 준비의 현실성을 논의할 수 있었던 사건이 많지 않았다”며 “공소사실의 실질적인 개수와 기록 분량이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에 피고인 방어권을 신중히 검토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법조계가 형사재판의 원칙인 불구속 재판의 원칙을 근본적으로 고민할 시점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반면 석방 가능성을 낮게 보는 견해도 있다. 지방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보석을 허가할 때 가장 중요하게 따지는 부분은 증거인멸의 가능성”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양 전 대법원장은 수사 과정에서 자신의 차량 블랙박스 SD카드를 삭제하고 법원 자체 조사가 진행 중이던 때 퇴임하며 자신의 컴퓨터를 영구 삭제토록 지시한 혐의를 받고 있다”며 “그러한 피고인에게 방어권을 이유로 보석을 허가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한 법관은 “기록이 방대하다고 해도 심의관들의 진술이 다수 확보돼 있는 등 사실관계를 다툴 부분은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며 “재판의 쟁점은 ‘직권남용죄’의 법리 다툼이 될 것으로 보여 양 전 대법원장의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지는 측면이 있다”고 전했다.

이가현 기자 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