휜 허리 완치…“후원자들 사랑이 예수 사랑”

입력 2019-03-04 00:00
엘리자 압두마나포바(가운데)가 지난달 28일 경기도 용인의 한 카페에서 기아대책 직원들과 함께 ‘손하트’를 그리며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엘리자 압두마나포바의 수술 전 척추 엑스레이 사진으로 척추가 S자 모양으로 심하게 휘어져 있다. 오른쪽은 수술 6개월 후인 2017년 9월의 압두마나포바.기아대책 제공
하나님 사랑은 4000여㎞ 떨어진 곳에 기적을 일으키기도 한다. 허리 굽은 소녀에게 전해진 한국인들의 사랑은 중앙아시아 키르기스스탄 소녀의 삶을 변화시켰다. 키르기스스탄 칼루스오르도에 사는 엘리자 압두마나포바(17·여)는 국제구호단체 기아대책과 서울아산병원의 도움으로 108도 휜 척추를 교정했다. 스무 살을 못 넘길 것이라는 진단을 받았던 그는 의사가 돼 이웃을 사랑으로 돕겠다는 꿈을 갖게 됐다.

지난달 28일 경기도 용인의 한 카페에서 만난 압두마나포바는 일주일간 한국을 방문 중이었다. 서울아산병원에서 엑스레이검사를 받기 위해서다. 진단 결과는 ‘이상 없음’. 그는 두 살 때 폐렴 수술을 받고 그 후유증으로 척추가 휘었다. 폐와 장기가 자리를 못 잡아 숨을 제대로 못 쉬었고 제대로 걸을 수도 없었다. 그랬던 그가 지금은 수영도 제법 잘하는 소녀가 됐다. 2년 전 허리에 수술용 나사 4개를 심는 수술을 한 달간 버텨냈기 때문이다.

지난달 23일 한국에 온 압두마나포바는 기아대책 후원자들을 만났다. 한 후원자는 그에게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으면 이겨낼 수 있다”는 말을 건넸다. 꿈에 그리던 롯데월드에서 놀이기구인 ‘자이로 드롭’도 탔다. 이날 오전은 한국민속촌에서 줄타기 공연을 구경하고 돌아온 참이었다. 일주일간 후원자들의 환대를 받은 압두마나포바는 “그들의 사랑이 예수님의 모습을 닮은 사랑이라는 것을 안다”며 “나도 누군가를 사랑하며 웃음과 행복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사랑은 압두마나포바의 가정도 변화시켰다. 수술 전 그의 아버지는 집을 떠나있을 때가 많았다. 자신의 월급이 모두 압두마나포바의 치료비로 사용되자 가정은 희망을 잃어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술 후 아버지는 집으로 돌아왔고 지난해엔 늦둥이 동생도 생겼다. 요즘 아버지는 딸을 위해 쉬지 않고 일하고 있다고 한다. 자동차를 고치고 석탄을 가져와 되파는 도매상 일도 한다. 딸을 떠나있던 일을 반성하고 매일 딸에게 “즐겁게 하루를 보냈느냐”고 안부를 묻는 아버지가 됐다.

압두마나포바는 키르기스스탄의 한 고등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다. 내년엔 대학 진학도 앞두고 있다. 현지 대학에 진학해서는 한국어 전공을 목표로 삼았다. 그 다음 목표는 한국의 의과대학에서 의술을 배우는 것이다. 압두마나포바는 “미래가 없던 나에게 새 삶을 선물한 한국의 의료 기술을 배우고 싶다”며 “나처럼 아프고 어려운 사람을 돕는 의사가 되겠다”고 말했다. 용인=글·사진 김동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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