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10명 중 8명은 성희롱을 당했을 때 참고 넘어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피해 사실을 외부에 알렸을 때 가해지는 2차 피해가 심각했지만 현행법으론 이를 막을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성가족부는 지난해 4월부터 12월까지 상시근로자 30인 이상 공공기관 400곳과 민간기업 1200곳에서 성희롱 실태조사를 벌인 결과 성희롱 피해자의 81.6%가 ‘참고 넘어갔다’고 말했다고 3일 밝혔다. 성희롱 실태조사는 2015년에 이어 두 번째다.
참고 넘어갔다는 사람 중 절반 정도는 ‘큰 문제라 생각하지 않아서’라고 답했다. 그러나 ‘문제를 제기해도 해결될 것 같지 않아서’(31.8%), ‘행위자와 사이가 불편해질까봐’(30.2%), ‘소문, 평판에 대한 두려움’(12.7%)을 호소한 사람도 많았다. 여가부는 “회사에서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란 데 대해 신뢰가 낮았다”고 진단했다. 사내 기구에 공식적으로 피해 사실을 신고한 사람은 0.8%다.
이번 조사에 새롭게 추가된 2차 피해 경험에선 응답자의 27.8%가 2차 피해 경험이 있다고 했다. 주변에 성희롱 사실을 말했을 때 오히려 피해자가 의심받거나 참으란 얘기를 들었다는 사람이 23.8%였다. 부당한 처우가 있을 수 있다는 암시를 받은 경우(8.4%), 조사 과정에서 사업주가 가해자 편을 든 경우(4.6%), 일부러 피해자 신상을 공개한 경우(3.1%)도 있었다. 규모가 작은 민간기업일수록, 정규직보단 비정규직에서 이런 피해가 다수 발생했다.
성희롱 피해를 처벌할 규정을 담고 있는 남녀고용평등법은 오히려 이런 2차 피해를 유발할 여지가 있다. 성희롱 가해자가 아닌 가해자를 처벌하지 않은 사업주에게 과태료를 물리도록 돼 있어 사업주가 사건을 은폐·축소할 수 있다. 성희롱 피해 정도에 비해 가벼운 처벌을 해도 법 위반은 아니어서 가해자 처벌에 한계가 있다.
또 현행법이 규정하는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에는 보험설계사나 프리랜서예술인 등 특수고용형태종사자가 포함되지 않는다. 이른바 ‘성희롱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셈이다. 박선영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비정규직과 같은 약자에게 가해지는 반복적이고 악의적인 성희롱에 대해 형사처벌 규정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김영선 기자 ys8584@kmib.co.kr
직장인 10명중 8명, 성희롱 당했을 때 참고 넘겼다
입력 2019-03-03 1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