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 365-3월 5일] ‘더 나은 의’를 행하라

입력 2019-03-05 00:01

찬송 : ‘너희 마음에 슬픔이 가득할 때’ 458장(통 513장)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마태복음 5장 17~20절

말씀 : 초등학교 시절 전도하던 제게 한 청년이 다가와 물었습니다. “예수님만 믿으면 구원을 얻는 거냐?” 저는 “그렇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청년은 “그럼 하고 싶은 대로 살다가 마지막 죽는 순간에 믿는다고 하면 되겠네”라고 말했습니다. 어떻게 살아도 예수님만 믿으면 가는 곳이 천국이라고 알아들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도 천국을 그렇게 이해할 위험이 있었습니다. 주님은 그들을 가르쳐야만 했습니다.

주님은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17절)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완전하게 한다’는 것은 구약 계명이 지닌 의도를 ‘충분히 드러낸다’는 뜻입니다.

또 주님은 구약이 여전히 다 이뤄져야 하는 예언적 내용을 담고 있다고 밝히십니다.(18절) 그렇기에 주님은 구약 계명 중 지키지 않아도 되는 것이 있는 것처럼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가장 작은 자라고 경고하십니다.(19절) 그만큼 구약의 모든 계명은 하나님의 깊은 의도를 품고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구약의 명령을 천국에 가기 위한 규정 정도로 알았던 이들(서기관, 바리새인)보다 더 뛰어난 의로움을 지니지 않고서는 결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가르치십니다.

주님은 21절 이하에서 말씀하신 ‘더 나은 의로움’이 어떤 것인지 설명하십니다. 예수님 당시의 지도자들은 살인하거나 간음하면 심판을 받는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살인하지 않았고, 간음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한 이유는 죄를 범하면 자신이 지옥에 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계명 지킴이 이웃을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주님은 그들의 가르침과 달리 형제에게 화를 내거나 ‘라가’(멍청이라는 속어)라고 한다면 지옥 불에 들어갈 것이요, 여인을 깨끗한 마음으로 바라보지 않는다면 마음에 간음한 것이라 가르치십니다.(21~22절) 이 두 명령은 실상 이웃 사랑을 목적으로 한 명령들이기 때문입니다.

‘더 나은 의’란 나의 유익이 아닌, 상대의 유익을 위해 계명을 지키고자 하는 의로움을 말합니다. 거지 나사로에게 그 어떤 악을 행하지 않았어도 부자가 지옥에 간 이유는 그에게 ‘더 나은 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세리 삭개오에게 구원이 임한 것은 그가 과거 자신의 악으로 괴로워했을 이들을 배려하는 사람으로 다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를 위해 율법이 정한 배상(120%)보다 훨씬 더 많은 것으로 갚으려 했습니다. 삭개오에게는 더 나은 의로움이 있었습니다.

주님은 자신의 유익만을 생각해 행하는 의로움으로는 결코 천국에 갈 수 없다고 밝히십니다.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48절) 분명 천국 백성은 예수님을 믿은 이후 이웃 사랑이라는 더 나은 의를 추구하는 사람입니다.

기도 : 죄 많은 자기 백성들을 사랑하사 십자가의 희생을 기꺼이 감당하신 주님 감사합니다. 저희는 주님의 희생을 통해 진정한 의로움이 무엇인지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그 감사로 인해 이웃 사랑이라는 ‘더 나은 의’를 추구하는 천국 백성이 되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오늘 하루도 주께서 가르쳐 주신 ‘더 나은 의로움’으로 이 슬픔 많은 세상을 위로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기도문


김희승 목사(파주 하늘소망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