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유총 ‘개학연기’에 맞벌이 가정 패닉, “학부모 내세워 정부 압박하는 것”

입력 2019-03-01 04:02
이덕선(오른쪽) 한국유치원총연합회 이사장이 28일 서울 용산구 한유총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시스
28일 기습적으로 단행된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의 ‘개학연기’ 발표에 유치원 원아를 둔 학부모들은 패닉에 빠졌다. 새 학기를 나흘 앞둔 상황에서 대부분 유치원들이 운영위원회조차 열지 않고 이 같은 결정을 내린 터라 학부모들은 돌봄 서비스 찾기 등 대책 마련에 분주했다. 한유총은 3·1절 연휴기간 정부가 협상에 나설 것을 주문했지만 교육부는 강경대응을 예고해 ‘3월 유치원 대란’ 현실화 우려가 높아졌다.

당장 연휴 후에 아이를 맡길 곳이 없는 맞벌이 학부모들은 한유총을 강력 비난했다. 학부모 사이에선 “놀라서 유치원에 전화해 봤는데 계속 통화 중이라 불안하다” “혹시 몰라 어린이집에 대기를 걸어놨다”는 걱정이 터져 나왔다. ‘워킹맘’ 권현숙(36)씨는 “맞벌이 입장에서는 유치원에서 아이를 안 받아준다고 하면 정말 심각한 상황”이라며 “게다가 무기한 연기라면 부부 중 한쪽이 직장을 그만둬야 하는 상황까지 올 수도 있다”고 토로했다. 맞벌이 부부 명지연(36)씨도 “아이를 맡길 곳이 전혀 없다. 유치원 비리가 생겨도 엄마들이 참고 다닌 것도 이런 이유 때문 아니겠느냐”고 했다. 장모(36)씨는 “한유총이 이렇게 나오면 맞벌이 학부모들은 숙이고 들어갈 수밖에 없다”며 “결국 한유총 대신 학부모가 정부와 싸우게 될 텐데 이게 한유총이 바라는 그림일 것”이라고 말했다.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학부모와 학생을 볼모로 삼아 사적 이익만을 얻고자 하는 초유의 행동에 엄정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서울시교육청도 한유총이 개학 연기 투쟁을 철회하지 않으면 법인 설립허가 취소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한유총은 수업일수 180일만 지키면 준법이라고 주장했지만 정부는 수업일수와 상관없이 불법이라고 봤다. 박현주 서울시교육청 유아교육과 장학사는 “유아교육법을 보면 운영위원회 자문을 거쳐서 연간 학사일정을 결정하도록 돼 있다”며 “그런 절차를 거치지 않고 개학을 연기하면 법 위반”이라고 설명했다. 유 부총리도 “한유총이 회원 유치원에 강제로 행동을 강요하는 것은 공정거래법 위반인 만큼 실제 이런 행위가 발생하면 공정거래위가 즉각 조사에 착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학부모단체 ‘정치하는엄마들’은 한유총을 공정거래법과 유아교육법 등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키로 했다.

교육부는 입학일을 연기하는 유치원 목록을 홈페이지에 공지하고 학부모 돌봄수요 신청을 받기로 했다. 어린이집과 아이돌봄서비스, 지방자치단체의 보육양육지원서비스와 연계해 돌봄 공백을 최소화하겠다는 방침이다. 서울시교육청도 인근 공립유치원과 초등학교 돌봄교실 공간을 활용해 모든 유아를 정상적으로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학부모들은 그러나 정부의 늑장 대응에도 불만을 토로했다. 학부모 손익찬(32)씨는 “늑장대응도 아니고 무대응에 가깝다. 유치원들이 폐원할 때도 학부모들이 스스로 알아서 다른 데로 갔다”며 “교육부는 처음부터 끝까지 수수방관했고 한유총도 그걸 아니까 정부를 쉽게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권현숙(36)씨도 “정부는 긴급돌봄체계라고 말하지만 아이들 입장에서는 완전히 새로운 환경에 갑자기 적응하라는 것”이라며 “아이들은 가지 않으려 할 거고 결국 부모가 떠맡게 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서울 마포구에서 유치원을 운영하는 한 한유총 소속 원장은 “학부모들에게 우리는 교육하고 싶어도 못하는 상황이니 교육청이나 시의회에 항의를 하라고 안내하고 있다”며 “여론이야 악화되든 말든 상관없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여론 추이에 따라 개학 연기 투쟁 동력이 바뀔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유총 회원들 사이에선 지도부의 개학 연기 투쟁 등 강경 일변도 대응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관악구에서 유치원을 운영하는 한 원감은 “우리도 한유총 소속이지만 개학 연기에는 참여하지 않기로 했다”며 “아이들을 데리고 거래하는 것은 여론을 악화시키기만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유총 소속이라고 밝힌 서울 강북구의 한 유치원 원장도 “아이들 교육권을 침해하는 투쟁은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온건파 사립유치원 원장들로 구성된 한국사립유치원협의회 역시 개학일 연기나 휴·폐원은 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이재연 김용현 이동환 구승은 기자 jay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