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현실화되지 못했던 ‘환상영화’, 롤러코스터 같았던 하루

입력 2019-02-28 22:40 수정 2019-03-01 00:42
마이크 폼페이오(왼쪽) 미국 국무부 장관과 김영철(오른쪽)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이 28일 하노이의 소피텔 레전드 메트로폴 호텔 중앙정원에서 웃으며 대화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단독회담을 끝내고 정원으로 걸어 나온 직후다. AP뉴시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다시 만난 28일은 롤러코스터 같은 하루였다. 단독회담에서 화기애애했던 분위기는 확대회담이 당초 예상보다 길어지면서 이상기류가 감지됐고, 결국 갑작스러운 회담 결렬이라는 충격적인 결과로 이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전 9시(현지시간) 회담 시작 시간보다 20분 가까이 이른 오전 8시40분쯤 회담장인 소피텔 레전드 메트로폴 호텔에 도착했다. 회담장에서 5분 거리인 멜리아 호텔에 묵고 있던 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회담장에 도착한 직후인 8시42분쯤 호텔에서 출발, 8시46분쯤 회담장에 도착했다.

두 정상 모두 일찍 도착함에 따라 회담 일정은 예정보다 5분 이른 8시55분에 시작됐다. 다시 만난 두 정상의 표정은 다소 경직된 태도를 보였던 전날 만찬 때와 달리 비교적 자연스럽고 부드러워 보였다. 이미 한 차례 만나는 모습이 공개된 만큼 카메라 앞에 서서 찍는 별도의 기념촬영도 생략하고 곧바로 회담장에 마련된 자리에 앉았다.

커다란 원탁을 사이에 두고 앉은 채 모두발언을 진행한 두 정상은 테이블에 팔을 올려두고 살짝 기댄듯 편안한 자세로 이어갔다. 먼저 입을 연 김 위원장은 “이틀째 훌륭한 대화를 나눌 것이다. 오늘도 역시 훌륭한 선택이 나올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우리 관계는 굉장히 단단하다. 관계가 좋으면 많은 좋은 일들이 일어난다”면서 “장기적으로 북한과 관련해 환상적인 성공을 거둘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에 대한 존경심, 북한의 경제적 미래에 대한 기대감 등도 거듭 강조했다. 김 위원장이 “(우리 만남을) 마치 환상 영화 한 장면처럼 보는 사람들도 있을 거라고 본다”고 언급하자 트럼프 대통령도 웃음을 터뜨렸다. 김 위원장은 이날 외신기자들의 질문에도 “속단하긴 이르지만 내 직감으론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비핵화) 의지가 없다면 여기 오지 않았을 것” 등으로 적극 답변하며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30여분간 단독회담을 마친 두 정상은 회담장 밖 호텔 중앙정원으로 나와 나란히 산책하며 대화를 더 나눴다. 먼저 정원에 나와 대기 중이던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등 참모들과 만나 확대정상회담장에 들어설 때까지만 해도 비교적 좋은 분위기가 이어지는 듯했다.

그런데 확대회담이 당초 오찬이 예정된 오전 11시55분을 훌쩍 넘기면서부터 협상장 안팎에서 불안한 기류가 흘러나왔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이 여러 차례 협상 속도 조절 뉘앙스를 담은 표현을 강조한 것에 ‘회담 결렬’에 대한 의중이 깔려 있었던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왔다.

김 위원장이 “우리에게 시간이 중요하다” “이제는 보여줄 때”라며 ‘담판’의 필요성을 강조한 데 비해 트럼프 대통령은 “서두를 필요 없다” “속도는 중요하지 않다” “오늘은 아니더라도” 등의 표현을 다섯 차례 이상 사용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이) 핵·미사일 실험이 없었던 것에 매우 감사하다. 어젯밤에도 그 이야기를 나눴다”면서 “김 위원장이 원한다면 그가 말한 것을 이야기하라 하겠지만, 원치 않으면 안 해도 된다”는 미묘한 발언을 하기도 했다.

12시30분쯤 백악관 출입 풀기자인 워싱턴포스트의 데이비드 나카무라 기자가 “오찬장에서 나가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접시와 메뉴 세팅이 다 됐지만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는 트윗이 올라왔다. 상황은 빠르게 전개됐다. 5분 뒤 미 백악관은 출입기자단에 “오후 4시 예정이던 트럼프 대통령의 기자회견을 2시로 앞당긴다”고 공식 발표했다. 30여분 뒤인 오후 1시25분쯤 김 위원장 차량이 호텔을 먼저 떠나는 모습이 포착되면서 공동성명 서명식이 취소될 것이라는 불길한 예측은 기정사실화됐다.

조민영 이택현 기자 my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