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는 것은 황홀하다’라는 책의 주인공은 다하라 요네코입니다. 평범한 가정의 요네코는 18세에 어머니의 죽음을 경험합니다. 이로 인해 인생의 공허감 허무 외로움 불안 두려움을 경험합니다. 산다는 것 자체가 고통이었습니다. “이렇게 사느니 죽는 게 낫다. 하루라도 빨리 어머니 곁으로 가고 싶다.”
어느 날 요네코는 달리는 기차에 몸을 던졌습니다. 왼팔, 오른쪽 손가락 2개, 두 다리가 절단되었습니다. 철로에는 요네코의 핏물이 가득했습니다. 6시간의 긴 수술을 통해 목숨은 건질 수 있었습니다. 요네코는 죽지 못하고 살아난 것이 육체의 고통보다 더 컸습니다. 매일 수면제를 먹지 않고는 잠을 잘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그녀의 운명을 바꿀만한 만남이 있었습니다. 병원 선교사 맥클로이의 통역사인 다하라 아키도시라는 청년이었습니다. 아키도시는 매일 병원에 찾아와 따뜻한 미소와 함께 전도지를 전해줍니다. 저 사람은 뭐가 그리 행복해 보일까. 요네코는 처음으로 살고 싶어졌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무엇인가 훌륭한 일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당신의 모습 그대로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살리기 위해, 행복을 주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을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습니다. 당신이 이 일을 사실로 믿고 받아들이면 승리 가운데 살게 될 것입니다.”
요네코는 그리스도가 정말로 그런 분이라면 한 번쯤 나의 인생을 걸어볼 가치가 있겠다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죽을 한 숟갈 떠먹을 때의 맛은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밥이란 이렇게 맛있는 것이로구나. 산다는 것이 이처럼 기쁘고 황홀한 것이로구나. 그 후로부터 지금 그녀는 한 남편의 아내로 두 아이의 엄마로 황홀한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룻기는 믿음의 정체성, 신앙의 정체성을 잃고 삶의 가장 밑바닥에서 처절한 고통을 경험한 한 가정 이야기를 다룹니다. 혼돈의 시대 베들레헴의 한 가정을 소개합니다. 나오미 가정입니다. 이들은 더 나은 삶을 위해 고향 베들레헴을 떠납니다. 이 땅을 버리고 겉보기에 좋아 보였던 모압으로 갑니다.
그러나 그들을 기다린 것은 풍요와 넉넉함이 아니라 저주와 사망이었습니다. 모압은 소돔성의 심판에서 롯의 아내가 저주받아 소금 기둥이 된 곳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모압 땅에 가면 안 되는 것을 알고서도 나오미 가정은 모압을 선택했습니다. 그들의 선택은 신앙적이지 않았습니다. 모압 땅에서 나오미 가정은 남편과 두 아들을 잃게 됩니다. 경제적 고통과 타향살이의 서러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하든지 어떤 선택을 하든지 믿음 안에서 해야 하고 믿음으로 해야 합니다. 모압에서 큰 고통을 겪고 나오미는 고향인 베들레헴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나오미가 베들레헴에 돌아온 이유는 단순히 먹고사는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영적 목마름이었습니다. 삶의 문제를 세상의 방법이 아닌 믿음의 방법, 영적인 방법으로 풀기 위해서였습니다. 본문에서 전능자 여호와를 반복적으로 표현한 것은 나오미의 고백입니다. 나오미는 베들레헴에 돌아왔지만 여전히 피곤한 삶의 연속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나오미 가정에 위대한 일을 준비하셨습니다. 나오미와 룻이 경험하게 될 일들이 우연히 찾아온 것이 아닌 하나님의 준비하심이었습니다. 룻은 보아스와 결혼하고 오벳을 낳습니다. 고통이 희락이자 즐거움인 나오미로 바뀌었습니다. 이후 오벳은 다윗의 증조부가 되고 예수님의 조상이 됩니다.
계절은 봄이지만 우리 삶은 여전히 엄동설한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믿음의 눈으로 보고, 믿음으로 해석하며, 믿음으로 살아갈 때 하나님은 그의 선하심으로 우리를 이끄실 겁니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음을 느낄 때 우리의 삶은 살아갈 만하고 황홀하게 될 것입니다.
권일 목사(안산 풍성한교회)
[오늘의 설교] 살만합니까?
입력 2019-03-01 18: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