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철도 산업은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 뛰어난 기술과 높은 신뢰도를 바탕으로 세계 시장에서도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잠재력이 높은 신흥국들을 중심으로 국내 철도산업의 진출도 본격화되는 추세다.
그러나 높은 기술 수준에 비해 철도차량·용품의 성능을 검증하는 체계는 다소 미흡한 것이 사실이었다. 한정된 여건 아래 제한된 항목만을 시험할 수 있어 시간과 비용이 막대하게 소요됐던 탓이다.
‘철도종합시험선로’ 건설은 바로 이 같은 고민에서 시작됐다. 철도종합시험선로는 최고 시속 250㎞로 열차가 달리는 상황에서 각종 용품과 시스템을 종합적으로 시험할 수 있는 시설이다. 이를 이용하면 철도관련 용품의 반복적·장기적 시험이 가능해 기술 신뢰성을 크게 높일 수 있다. 철도종합시험선로 완성으로 대한민국 철도산업은 이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됐다. 이달 15일 공식 개통이 예정된 철도종합시험선로를 지난 20일 미리 둘러봤다.
세계 다섯번째 고속 시험 가능 선로
철도종합시험선로는 10여년 전부터 필요성이 논의되기 시작했다. 2009년 2월 경부고속철도 2단계 구간에서 침목 수백여개가 균열된 것이 원인이었다.
철도기술은 빠르게 성장하는 반면 침목과 같은 철도 용품의 검증체계가 상대적으로 미흡했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었다. 실제로 당시에는 열차가 다니는 일반 선로에서 제한적으로만 열차 관련 시험이 이뤄졌다. 열차 운행이 종료된 이후부터 다시 운행을 시작하기 전까지 불과 몇 시간 동안 순식간에 시험이 진행되는 셈이다.
제한적으로, 더욱이 열차가 다니는 현장에서 시험이 진행되는 만큼 시험을 한다는 것 자체가 위험을 내포해야만 했다. 게다가 단시간에 시험을 끝마쳐야 하는 탓에 제품을 다양한 환경에 노출시키거나 세밀하게 점검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철도 분야는 매우 복잡할 뿐 아니라 안전과 직결돼 있기에 차량과 인프라, 각종 분야별 용품, 시스템과 인터페이스를 오랜 기간 반복적으로 시험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철도가 운행될 때는 다양한 환경에 노출되기 때문에 보다 많은 환경 조건을 제공할 수 있는 전용 시험선로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를 해소하기 위한 방안으로 철도종합시험선로가 건설되기 시작했다. 오랜 논의를 거쳐 공사에 착수한 지 약 5년이 됐다. 선로가 공식 개통되면 우리나라는 시속 200㎞ 이상의 환경에서 시험이 가능한 철도종합시험선로를 세계 다섯 번째로 갖게 된다. 개통 이후에는 철도기술연구원이 운영을 담당할 예정이다.
조동필 한국철도시설공단 종합시운전부장은 “철도종합선로는 다양한 조건의 선로를 조성해놨다”며 “각종 신호설비와 통신설비가 설치돼 있으며 개폐기동 등은 전부 원격으로 운영된다”고 말했다.
세계최초 AC·DC 혼용 구간도
세종시와 충북 청주시 오송읍 일대에 조성된 철도종합시험선로는 오송역, 경부선 전동역과 이어져 있다. 총 연장 12.990㎞로 선로의 길이는 다른 나라보다 비교적 짧지만 각 구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시험을 진행하기에는 충분하다.
내부에는 각종 최신 시설이 설치돼 알찬 시험이 가능하다. 선로에는 교량 9곳(1.5㎞), 터널 6곳(4.2㎞)을 비롯해 교량의 상부구조물인 ‘거더(girder)’를 교체할 수 있는 테스트베드 구간이 존재한다. 이 테스트베드 구간을 이용하면 다양한 유형의 교량에서 열차와 부품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우리나라 철도종합시험선로의 가장 큰 특징은 세계 최초로 직류·교류 혼용 구간이 조성돼 있다는 점이다. 도시철도가 보통 1500v 급전방식의 직류(DC)를 사용한다면 일반·고속철도는 2만5000v 급전방식의 교류(AC) 전류를 사용한다. 다른 나라의 경우 시험선로 내에 직류·교류 구간이 각각 나뉘어 있는 반면 국내 종합시험선로는 시작점부터 6.45㎞ 지점까지는 교류 전용, 그 다음부터 종점까지의 6.54㎞ 구간은 직류와 교류를 혼용할 수 있는 구간으로 만들어졌다.
이관제 철도종합시험선로건설공사 건설사업관리단장은 “우리나라 철도종합시험선로는 세계 최초로 같은 구간에서 직류와 교류를 시험할 수 있다”며 “필요할 때마다 적합한 전류를 넣을 수 있도록 시스템을 조성해놨다”고 설명했다.
종합시험선로에서 시험이 가능한 항목은 다양하다. 철도차량 분야에서는 비상제동시험 등 59개 항목 170종을, 노반 분야에서는 노반구조 지지력 등 9개 항목 15종을 시험할 수 있다. 또 통신분야를 비롯해 궤도·신호·교량·소음분야 등에서 총 198개 항목 447종의 시험을 수행할 수 있다.
세계시장 진출 가능성 ‘활짝’
철도종합시험선로는 앞으로 국내 개발 제품의 현장 적용성, 신뢰성 등을 평가한다. 장기적·반복적 시험이 가능해 사전에 수정 및 보완이 가능하고 실용화 기간도 단축된다.
지난달 중순 시작된 종합시험운행을 통해 이미 차세대 초고속 열차 HEMU-430과 KTX산천 등이 철도종합시험선로 위를 달렸다. 이들의 운행이 순조로웠던 만큼 오는 5일 종합시험운행이 완료되면 15일 개통식을 시작으로 운영이 본격화된다.
개통 이후에는 해외시장 진출 역시 대폭 확대될 것으로 기대된다. 실제로 개통식 종료 후 예정된 첫 시험도 현대로템에서 수주한 호주의 전동차 사업인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종합시험선로가 없었다면 호주 현지까지 완성차량을 가져가서 시험을 해야 하지만, 이제는 국내에서 충분한 수준의 시험을 수행할 수 있기에 제품의 신뢰성을 크게 높일 수 있게 됐다.
신뢰성 확보는 곧 철도분야의 국산화 가속과 해외수출 판로의 확대를 의미한다. ‘철도선진국’으로의 진입에 철도종합시험선로가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이종윤 한국철도시설공단 충청본부장은 “완공 이후 첫 시험에서 열차가 무사히 왕복하는 모습을 보고 많은 이들의 땀과 노력이 드디어 결실을 맺었다고 생각했다”며 “철도종합시험선로 완공으로 철도경쟁력의 향상과 그에 따른 국가의 수익 증가, 국내 철도산업의 발전은 물론 대국민 철도서비스 향상으로도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전희진 기자 heejin@kmib.co.kr
[이제는 지방시대] 철도 성능 검증 안전하고 빠르게… ‘종합시험선로’ 달린다
입력 2019-02-28 21: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