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촌로’ 역사속으로… 이제 ‘고려대로’

입력 2019-02-27 21:16
서울 성북구청 인근 도로에서 27일 구청 관계자들이 도로명판 교체 작업을 하고 있다. 성북구는 친일 잔재 청산작업의 일환으로 지역 주민들의 동의를 받아 ‘인촌로’라는 도로명을 ‘고려대로’로 교체했다. 뉴시스

친일행위를 한 인촌 김성수(1891~1955)의 호를 딴 ‘인촌로’라는 도로명이 28년 만에 폐지됐다.

이승로 서울 성북구청장은 27일 오전 11시 주민과 고려대 학생들, 항일운동단체 관계자 등 200여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성북천 앞 도로 위에 걸려 있는 마지막 인촌로 도로명판을 내리고 ‘고려대로’를 새로 내걸었다. 이로써 인촌로라는 이름을 단 도로명판과 건물번호판 1626개 교체 작업이 완료됐다.

이 구청장은 “일제 잔재가 담긴 도로명이 적지 않으나 주소 사용자의 과반수 동의라는 조건 때문에 대도시에서 도로명 개명 사례가 흔치 않다”면서 “민·관이 협력해 이룬 성북구의 사례가 다른 지자체에 큰 자극을 줄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인촌로는 지하철 6호선 보문역에서 고대병원, 안암역, 고대앞사거리까지 이어지는 1.2㎞ 길이의 도로다. 1991년 서울시 지명위원회는 이 도로에 고려대 설립자 김성수의 호를 따서 인촌로라는 도로명을 붙였다.

인촌 김성수는 2009년 대통령 직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일제강점기 친일반민족행위 관련자’ 704명의 명단에 오르면서 친일행적이 널리 알려지게 됐다. 인촌의 친일행위는 2017년 대법원 판결로도 확인됐다. 정부는 지난해 2월 국무회의에서 인촌이 받은 건국공로훈장을 취소했다.

이를 계기로 항일독립지사선양단체연합과 고려대 총학생회, 주민들은 인촌로라는 명칭을 폐지할 것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성북구는 지난해 11월 인촌로 명칭을 고려대로로 변경하기로 의결하고, 12월 인촌로 주소 사용자 9118명 중 5302명(58%)의 서면동의를 받아냈다.

성북구 관계자는 “구청 직원들이 평일 야간과 주말까지 이용해 인촌로 주소 사용자 전 세대를 평균 5회 이상 방문하며 서면동의를 받았다”면서 “광주 서구가 주민 665명 중 460명의 동의를 받아 ‘백일로’를 ‘학생독립로’로 변경한 사례가 있지만 대도시권에서 주민 9000명 이상의 의사를 확인해 도로명을 변경한 경우는 흔치 않다”고 말했다.

인촌로라는 도로명은 성북구뿐만 아니라 인촌의 고향인 전북 고창군 부안면에도 있다. 고창에선 인촌이 예전부터 내려오는 마을 이름을 따서 호를 지은 만큼 도로명을 바꾸는 것은 무리라는 얘기가 많다. 지난달 실시된 주민여론 조사에서도 70%가 인촌로를 유지해야 한다고 답변했다. 고창군 관계자는 도로명 변경과 관련해 “좀 더 신중히 검토하고 판단하겠다”고 말했다.

김남중 기자, 고창=김용권 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