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민태원] 금연광고, 생각을 바꿔보자

입력 2019-02-28 04:03

광장에 설치된 스크린에 젊은 남성이 등장한다. 흡연자가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그 앞을 지나가자 스크린 속 남성이 콜록거리며 기침을 한다. 주변의 다른 흡연자들이 멈춰 서서 스크린 속 장면을 지켜보며 자신의 손에 들린 담배를 쳐다본다. 영상 속 남성은 “우리의 임무는 당신이 더 장수하며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하고 새해를 맞아 새롭고 건강한 습관을 얻도록 돕는 것”이라고 말한다.

2년 전 스웨덴의 한 약국 기업이 연초 스톡홀름 광장에 설치해 전 세계적으로 화제가 됐던 금연 광고다. 스크린 밑에 내장형 연기 감지기를 달아 흡연자가 지나갈 때마다 기침을 할 수 있게 고안됐다. 흡연자의 흥미를 유발하고 상호작용할 수 있게 만든 아이디어가 기발했다. 요즘 주목받는 인터랙티브(interactive) 금연 광고다.

얼마 전 ‘국내 금연 캠페인의 현재와 미래’를 주제로 열린 세미나에서 한 발표자가 소개한 이 금연 광고는 신선했다. 우리가 지금까지 TV나 지하철 등 공공장소에서 접해왔던 금연 광고와는 많이 달랐다. 일방적 보여주기가 아닌 흡연자가 직접 참여하고 소통하는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자신의 흡연 행위를 되돌아보도록 함으로써 금연을 유도한다. 또 금연 광고의 단골 메뉴인 공포나 혐오 장면이 등장하지 않는다.

반면 국내 금연 광고는 대부분 공포를 기반으로 한 위협 소구(訴求)에 치우쳐 있다. 흡연의 폐해나 부정적 측면 부각 등 메시지 전달도 획일적이어서 흡연자의 수치심과 분노를 살 때가 많다. 2002년 폐암으로 투병하던 코미디언 고(故) 이주일씨가 야윈 모습으로 등장한 금연 광고는 “담배 맛있습니까. 그거 독약입니다”라는 메시지로 흡연자들을 잔뜩 겁먹게 했다. 이후 담배를 사면서 “후두암 1㎎, 폐암 한 개 주세요”라고 말하는 광고 장면은 섬뜩할 정도였다. 흡연으로 병을 얻은 사람들의 ‘증언형 금연 광고’는 공포 수위를 더 높였다. 구강암에 걸려 목에 구멍 난 환자가 “혀의 3분의 1을 잃었습니다”라고 증언해 충격을 줬다. 지난해 말 새롭게 선보인 ‘흡연 노예’ 콘셉트의 금연 광고는 흡연자를 궐련형 전자담배에 조종당하는 꼭두각시처럼 묘사했다.

이런 금연 광고가 금연구역 확대나 담뱃값 인상 정책 등과 함께 국내 흡연율 감소 추세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음을 부정할 순 없다. 하지만 헬스커뮤니케이션 학자들은 흡연율이 드라마틱하게 줄고 있지 않은 이유 중 하나로 국내 금연 광고의 한계를 꼽는다. 메시지 전달 대상이 흡연자인지 비흡연자인지 명확하지 않고 성별이나 연령에 대한 고려 없이 단순히 공포 소구에만 매달리다 보니 흡연자들로부터 환영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흡연자단체는 최근 ‘흡연 노예’ 광고를 흡연자를 모독하는 인격 침해로 규정하고 중단을 요구했다.

금연 광고의 목적은 신규 흡연 인구의 유입을 막고 흡연자들의 금연을 유도하는 데 있다. 흡연율을 획기적으로 줄이려면 현재 담배 피우는 사람들이 끊게 만드는 게 더 중요하다. 하지만 그간 정부가 내놓은 금연 광고들이 흡연자의 금연을 얼마나 유도했는지는 미지수다.

흡연자가 공포로 혐오나 분노, 수치심을 경험할 경우엔 ‘나도 끊을 수 있다’는 자기 효능감과 반응 효능감이 떨어져 메시지 노출을 오히려 회피하게 된다고 한다. 예를 들어 TV를 보다가 금연 광고가 나오면 채널을 돌리거나 지하철에선 금연 광고가 없는 칸에 탄다는 것이다. 또 오랫동안 위협 소구 금연 광고에 익숙해지면 담배가 몸에 해롭다는 걸 알면서도 흡연에 대한 두려움이 생기지 않고 메시지를 받아들이려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이런 금연 광고의 의도하지 않은 ‘반작용과 둔감화 효과’를 경계해야 한다.

정부는 금연 광고의 흡연율 감소 기여, 의도하지 않은 효과에 대한 정밀한 연구를 수행할 필요가 있겠다. 아울러 흡연자와 비흡연자, 성별, 연령 등을 감안한 보다 고도화된 금연 광고를 선보여야 한다. 수십년간 고착화돼 온 금연 광고, 이젠 생각을 바꿔보자.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