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네 마 톱 마나임 제 아노힘 감 야하.”
유대인들이 오랫동안 즐겨 부르는 대표적 민요의 가사이다. 그 의미는 시편 133편 1절의 말씀이다.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사랑하는 형제들이 함께 어울려 축제를 벌이는 순간의 즐거움을 담고 있다. 이런 공동체의 모습은 우리 모두의 마음에 품은 일종의 이상이다. 어릴 적 동무와의 놀이 속에, 가족 간의 덕담 속에 그리고 광장에 모인 시민의 축제 속에 펼쳐지는 어울림 한마당은 모든 갈등을 해소하는 회복의 장이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이 노래를 결코 즐겁게 부를 수만은 없었다. 흥겨운 리듬의 노래에는 특유의 단조 멜로디에 얹힌 슬픔의 감성이 배어 있다. 수천년 동안 이들은 고향을 등지고 여러 지역을 유리하며 서로 떨어져 난민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으니까. 이들은 지금 존재하지 않는 미래의 희망을 기대하며 이 노래를 불렀다. 언젠가는 흩어진 형제들이 함께 어울려 살 수 있기를 고대하며 말이다. 이 노래는 유대인들의 한과 흥을 담아낸 ‘아리랑’인 것이다.
내일이면 3·1운동 100주년을 맞는다. 우리 민족이 나라를 잃은 설움의 역사를 다시 돌아보게 된다. 민족의 자존심이 처참히 무너진 지 9년 만에 백성들은 민족의 독립과 회복을 외치며 함께 일어났다. 이 항쟁의 결과에 상관없이 이들이 품었던 ‘내 나라에서 함께 주체적으로 살고 싶다’는 염원은 지금까지 우리 민족의 큰 정체성과 자존감의 근원이 됐다. 이들이 그토록 바라던 꿈은 수십년이 지나서야 이뤄졌다. 그 인내의 시간 동안 강제 노역장에서, 나와 상관없는 전장에서, 멀고 먼 타향을 떠돌다 고향으로 돌아가 누릴 형제들과의 만남과 회복을 그리며 서럽게 노래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시편 말씀을 접하며 오늘도 이들이 간절히 불렀던 희망의 노랫가락이 들리는 듯하다. 그러나 독립을 맞은 후에도 우리는 분단된 가운데 형제들이 헤어져 서로를 증오하며 이 노래를 지금까지도 절실하게 부르고 있다. 시편 기자가 하나님 앞에 간절히 토로하듯, 도대체 언제까지 우리가 이 노래를 불러야 할까.
지금 베트남 하노이에서 도저히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았던 두 사람이 만나고 있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지난 세기 극심한 이념 갈등 속에 치열한 싸움을 벌였던 바로 그 장소에서 말이다. 이들은 서로 간 평화의 길을 모색한다. 지구상 유일의 분단국가로서 우리는 다른 모든 이해관계와 묵은 감정에 대한 시시비비를 차치하고 함께 왕래하며 평화를 이루길 고대한다. 한반도 양측에 갈라진 우리 민족의 공통된 염원이 이 회담을 통해 해결의 실마리를 찾길 기대한다.
큰 덩치에 금발을 휘날리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당당한 걸음에서 미국이란 나라의 부와 힘을 느낀다. 그가 선거에서 외친 ‘다시 위대해진 미국’의 꿈은 무엇일까. 그러고 보니 지난달 15일은 마틴 루서 킹 목사의 90주년 생일이었다. 미국에서 한 사람의 생일이 국경일이 된 유일한 날이다. 그는 미국인에게 새로운 ‘아메리칸 드림’을 전해줬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 이 나라에서 모든 인종이 함께 어울려 살며 서로 손잡고 옛 찬송 한 가락을 부르며 화해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될 꿈입니다.” 그가 꾼 화합과 평화의 희망이 미국을 넘어 한반도에서도 이뤄지길 간절히 바라본다.
나는 오늘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북·미 정상의 만남을 지켜보며 우리 민족이 함께 어울려 즐겁게 화합하는 희망의 노래를 간절히 불러본다.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윤영훈 (성결대 교수)
[시온의 소리] 히네 마 톱: 다시 부르는 희망의 노래
입력 2019-02-28 0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