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혁철, 왜 협상 때마다 ‘적진’ 속으로…

입력 2019-02-26 04:03

김혁철(사진) 북한 국무위원회 대미특별대표와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이끄는 북·미 협상팀은 베트남 하노이 소재 5성급 호텔인 ‘파크 하노이’에서 실무협상을 하고 있다. 이 호텔은 비건 대표가 숙소를 차린 곳이어서 김 대표 입장에서는 ‘적진’에 들어가 협상을 하는 셈이다.

이런 어색한 모양새가 만들어진 건 2차 북·미 정상회담 일정과 장소가 급박하게 결정된 데 따른 것으로 추정된다. 시간이 촉박한 탓에 북·미 양측 실무진 숙소에서 가깝고 각종 설비가 제대로 갖춰진 회담장을 찾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 북한 실무진이 숙소를 꾸린 베트남 정부 게스트하우스(영빈관)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베트남 공식우호방문 준비 때문에 실무협상을 위한 공간이 부족했던 것으로 보인다.

북·미 양측은 이번 2차 정상회담을 준비하면서 여러 차례 전례 없는 파격을 선보였다. 김 대표에 앞서 실무협상을 이끌던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과 비건 대표는 지난 1월 스웨덴 외곽 산골에 위치한 휴양시설에서 3박4일간 숙식을 같이하며 마라톤담판을 벌였다. 북한 측 실무 책임자가 김 대표로 교체된 이후인 이달 초 비건 대표는 평양에 2박3일간 머물며 실무회담을 하기도 했다. 미 행정부 인사가 도·감청 우려가 큰 적진 한가운데에서 장시간 협상한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북·미 실무협상 대표들이 의도적으로 여유로운 모습을 연출하는 정황도 감지된다. 비건 대표와 앨리슨 후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보좌관 등 미국 측 실무진은 하노이 체류 기간 중 취재진이 몰려들 때마다 미소를 지었다. 비건 대표는 지난 23일 취재진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세워 보이기도 했다. 미국 조야(朝野)에서 제기되는 북·미 대화 회의론을 염두에 두고 일부러 밝은 표정을 지었을 가능성이 있다. 어두운 표정이 노출될 경우 자칫 북·미 실무협상이 난항을 빚고 있다는 해석을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비건 대표는 지난 24일 오전 미사를 위해 성당을 방문하기도 했다. 김 대표 역시 몰려드는 취재진을 향해 종종 미소를 지어 보여 눈길을 끌었다.

외교 협의를 위해 움직일 때마다 다량의 북핵 관련 서류를 들고 다녀 ‘서류왕’이라는 별명이 있는 비건 대표는 하노이 체류 중에는 손에 문서를 든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최근 수개월간 집중적으로 북핵 협상을 진행하면서 관련 내용을 완전히 숙지했음을 보여준다.

김 대표와 비건 대표는 두 정상이 하노이에 도착하기 하루 전인 25일에도 만나 실무협상을 이어갔다. 김 대표는 이날 한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다가 오후 5시30분쯤(현지시간) 김성혜 노동당 통일전선부 실장과 함께 파크 하노이에 들어섰다. 이에 앞서 비건 대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숙소로 유력한 JW메리어트 호텔에서 포착됐다. 미국 측 실무진은 트럼프 대통령이 하노이에 도착하는 26일부터는 JW메리어트 호텔로 옮겨 본진과 합류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노이=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