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멜리아 호텔서 한·미 기자들과 숨바꼭질 할까

입력 2019-02-26 04:00
총을 든 베트남 경찰이 25일 하노이의 멜리아 호텔 앞에서 경비를 서고 있다. 멜리아 호텔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숙소로 유력하게 거론되는 곳이다(왼쪽 사진). 베트남 군인이 베트남 정부 게스트하우스(영빈관) 앞 잔디밭에서 금속탐지기로 폭발물 수색작업을 하고 있다. 영빈관에는 김혁철 국무위원회 대미특별대표 등 북측 실무팀이 머물고 있다. 뉴시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미국 백악관 출입기자단의 프레스센터가 마련된 베트남 하노이 멜리아 호텔에 묵을 것이 확실시된다. 김 위원장과 미국 기자들이 한 호텔에서 어색한 조우를 하는 진기한 장면이 벌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다.

북한과 베트남 측은 김 위원장 숙소에 대해 철저히 함구하고 있다. 그러나 멜리아 호텔이 김 위원장의 숙소로 유력하다는 정황 증거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김 위원장 숙소가 이 호텔 고층부가 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베트남 정부 인사들과 경찰은 25일 호텔 로비에 금속탐지기와 엑스레이 검색대를 설치했다. 탐지견들의 호텔 내외부 수색 작업도 진행됐다. 선발대로 지난 24일 하노이에 들어온 북한 경호팀이 멜리아 호텔에 여장을 푼 것도 유력한 증거다. 근접 경호를 하는 북한 경호원들은 김정은 위원장보다 이틀 먼저 도착해 호텔 내외부 시설을 파악했다. 근접 경호팀이 경호 대상인 김 위원장과 다른 호텔에 묵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소총으로 무장한 베트남 군인들이 호텔 정문 앞을 지키는 등 경비도 한층 삼엄해졌다.

멜리아 호텔의 가장 큰 장점은 주베트남 북한대사관과의 거리가 1.4㎞로 매우 가깝다는 점이다. 북한은 지난해 6·12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때도 북한대사관을 거점으로 활용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멜리아 호텔 7층엔 백악관 출입기자들의 프레스센터가 설치된다. 기자들이 득실대는 곳에 김 위원장의 숙소가 마련된 셈이다. 미국 기자들뿐만 아니라 한국을 포함한 각국 워싱턴특파원들이 프레스센터에서 미 정부 관계자들의 브리핑을 듣고 취재와 기사 작성을 할 예정이다. 김 위원장 일행과 한국·미국 기자들 간 숨바꼭질이 벌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북한과 베트남 정부, 멜리아 호텔 측은 김 위원장 일행과 기자단이 조우하지 않을 방법을 찾기 위해 고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측이 백악관 프레스센터가 이 호텔에 세워진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으나 시간에 쫓겨 마땅한 대안을 찾지 못했다는 분석도 있다.

기자가 25일 멜리아 호텔 7층을 방문하니 막바지 준비가 한창이었다. 한 백악관 관계자는 “수백명의 기자들이 프레스센터를 신청했다”고 “정확한 기자 숫자 등은 보안사항이라 말해줄 수 없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김 위원장 숙박 여부와 관련해 “아는 정보가 없다”고 잡아뗐다.

북·미 정상회담의 주요 장소들은 삼엄한 경비에 들어갔다. 정상회담 장소로 유력한 소피텔 레전드 메트로폴 호텔은 입구 2곳에 보안요원을 2명씩 배치하고 취재진의 로비 출입을 막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묵을 것으로 보이는 JW메리어트 호텔도 보안이 강화됐다. 호텔 주변에 철제 펜스가 세워졌고, 곳곳에 무장한 베트남 경찰 특공대가 배치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머물 가능성이 큰 호텔 5층은 출입이 완전 통제됐다. 북한 실무팀이 숙소로 쓰고 있는 베트남 정부 게스트하우스(영빈관)에서는 건물 외벽 페인트칠 작업이 진행됐다.

하노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