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듀파인 도입 땐 회계 투명화… ‘쌈짓돈’ 잃는 원장들 반발

입력 2019-02-25 19:18 수정 2019-02-25 21:35
검은색 옷을 입은 한국유치원총연합회 회원들이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고 교육부의 유아교육법 시행령 개정안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교육부가 사립유치원 회계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내놓은 ‘국가관리회계시스템(에듀파인)’ 도입 의무화 방침에 대해 “사유재산 침해”라고 주장했다. 윤성호 기자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가 정부의 회계 투명화 등 유치원 개혁 조치에 반발하는 이유는 결국 돈이다. 한유총은 유치원을 자영업으로 여기지만 정부는 학교로 규정한다. 과거에는 정부가 사립유치원들이 영리 목적으로 운영돼도 눈감아줬다. 그러나 지난해 비리 사립유치원 사태로 입장을 바꿔 돈 벌이를 차단하자 파열음이 나는 것이다.

25일 교육부에 따르면 다음 달 1일부터 대형유치원 581곳(그래픽 참조)에 국가관리회계시스템 에듀파인이 의무화되며 내년에는 모든 사립유치원으로 확대된다. 현재 사립유치원은 국가에서 주는 누리과정비와 국가·지방자치단체 보조금, 학부모 원비를 섞어 교육비로 사용하고 남으면 원장이나 설립자가 가져간다. 에듀파인이 도입되면 들어오는 돈과 나가는 돈이 명확히 기록되므로 허투루 쓸 수 없다. 남는 돈은 학부모에게 돌려줘야 한다. 엉뚱한 계좌로 송금하면 자동으로 경고 알람을 띄워주는 ‘클린 재정’ 기능의 간섭도 받게 된다. 교육 당국은 실시간으로 돈의 흐름을 모니터링할 수 있다.

유치원을 수익 사업으로 여기고 은행에서 돈을 빌리는 등 목돈을 투자해 대형 유치원을 설립했거나 문어발식으로 확장한 원장이나 설립자가 강력 반발하는 이유다. 자영업자처럼 이윤 추구를 못하고 앞으로는 급여를 받아야 하므로 강경 입장을 고수하는 것이다. 유치원 운영 기간이 비교적 길어 충분히 이익을 취했다고 여기는 서울 지역 유치원들과 신도시의 신생 유치원들 사이에 온도차가 나타나는 이유다.

사립유치원들은 시설사용료를 취할 수 있도록 하면 에듀파인을 받아들이겠다는 입장이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교육부는 ‘절대 불가’ 입장이다. 당장 어린이집이나 노인요양시설, 사립학교 등과 형평성 문제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일부에선 유치원을 폐원하고 유아 대상 학원으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교육부는 학부모 3분의 2 동의와 소속 유치원 원아들이 다른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으로 모두 이동 가능해야 폐원 절차를 받아주기로 했다. 사립유치원들이 손쉽게 학원으로 간판을 바꿔 달 수 있으면 학생과 학부모에게 피해가 돌아간다. 정부의 회계 투명화 조치도 사실상 무용지물이 된다. 마땅한 유치원이 없어 울며 겨자 먹기로 학원으로 보내야 하는 지역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학원이기 때문에 규제도 어렵다. 정부는 유치원이 폐원하는 지역에 국공립 유치원을 세울 계획이지만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하다.

교육부가 유례없이 강경 모드인 이유는 여론 때문이다. 교육 당국이 과거 사립유치원 비리의 방조범으로 비판받는 상황이다. 사립유치원 단체의 강력한 로비력과 동원력 때문에 손대지 못했지만 이번 기회에 개혁하겠다는 분위기가 강하다는 게 교육부 관계자의 설명이다.

관건은 사립유치원들의 반발 강도다. 새 학기를 앞두고 한유총이 집단 휴원이나 폐원 카드를 빼들 경우 ‘유치원 대란’은 불가피해진다. 정부와 학부모가 가장 우려하는 시나리오로 특히 맞벌이 부부는 ‘멘붕’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유치원 대란이 벌어지면 비난의 화살이 정부에도 일부 돌아가지만 한유총에 집중되기 때문이다. 이런 와중에 국세청과 공정위, 경찰 등 사정기관이 팔을 걷어붙이면 한유총 강경파 원장들이 운영하는 유치원이 가장 먼저 타깃이 될 가능성이 높다. 서울시교육청이 법인 설립 허가를 취소하는 철퇴를 내릴 수도 있다. 한유총이란 조직 자체가 와해될 수 있다는 얘기다. 또 한유총 강온파의 대립으로 집단행동의 위력이 크지 않을 수도 있다. 한유총 지도부가 집단 휴·폐원에 극도로 말을 아끼는 이유다. 다만 25일 열린 국회 집회에서 예상보다 많은 인원이 집결하면서 강경파 목소리에 힘이 실릴 것이란 관측도 있다.

이도경 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