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정년 60세로 연장되자 고용 줄었다, ‘65세 정년’은 양날의 칼

입력 2019-02-25 19:14 수정 2019-02-25 20:24

한국 사회에서 정년은 복잡한 지형도 위에 서 있다. 정년을 늘리면 기업의 부담이 는다. 노동계도 나이 들어 일하는 걸 무작정 반기지 않는다. 여기에다 정년은 청년실업이라는 폭발력 강한 사회문제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일자리를 두고 청년층과 중장년층이 겨루는 ‘세대 간 일자리 전쟁’이 촉발될 수도 있다. 육체근로자 가동연한을 65세로 상향 조정한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최근 판단이 근로자 정년 연장으로 이어질지 관심이 쏟아지는 이유다.

정년 연장이 ‘고용 축소’라는 부작용으로 이어진다는 우려도 나온다. 국책연구기관에선 정년 연장이 비용 증가로 이어져 기업이 고용을 줄이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정부는 당장 정년 연장 논의가 어려운 만큼 정년과 가동연한 사이 공백기를 장려금 등으로 지원하는 방안을 모색할 방침이다.

한국노동연구원 남재량 선임연구위원은 25일 ‘정년 60세 이상 의무제 시행의 고용효과 연구’ 보고서를 냈다. 보고서는 권고조항이던 ‘60세 정년’ 규정을 의무조항으로 바꾼 2013년을 기준으로 2011년과 2015년의 기업 고용 변화를 살폈다. 2011년에는 정년 60세가 권고조항이었다. 대부분 기업은 55~58세를 정년으로 정하고 있었다. 2015년은 이듬해부터 시행되는 정년 연장에 미리 대응해 정년을 60세로 맞춰 근로계약을 맺기 시작하던 시점이다. 남 선임연구위원은 “기업의 매출 증가 등 다른 모든 영향을 배제하고 정년 60세 의무화 시행이 고용에 미치는 영향만을 봤을 때 정년 연장이 고용에 부정적 효과를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정년 연장이 고용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것은 한국의 생애 임금구조 때문이다. 현재 임금구조는 ‘젊어서는 실제 일하는 것보다 적게 받고, 정년에 가까울수록 생산성보다 높은 임금을 받는 형태’로 설계돼 있다. 정년이 연장되면 생산성을 초과하는 임금을 받는 근로자가 더 많아지고, 기업은 노동비용 증가라는 압박을 받게 된다. 기업은 정년 연장에 고용을 줄이는 식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는 경영계의 정년 연장 반대 논리와 맞닿아 있다. 특히 한국의 임금구조는 근속연수가 올라갈수록 임금이 자동으로 오르는 연공급제에 기반을 둔다. 정년 연장에 따른 기업의 노동비용 증가가 더 강하게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2013년 정년 60세 의무화 논의를 진행할 때 최대 쟁점도 연공급제였다. 당시 경영계는 정년 연장을 하려면 임금피크제나 직무급제 도입 등 임금구조 개편을 먼저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임금구조 개편 없이 정년을 늘리면 갑작스러운 비용 상승과 그에 따른 생산성 하락에 대응할 수가 없다.

관점은 다르지만 노동계도 정년 연장에 부정적이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은 지난 21일 대법원 판결 직후 성명서를 내고 “70세 가까이 노동해야만 하는 사회가 바람직하지 않다. (정년 연장은) 사회·경제적인 종합 고려와 충분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고령자 복지 등 사회 안전망이 확충되지 않은 상황에서 근로기간만 무작정 늘리는 식의 변화는 피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정년 연장은 청년실업이라는 민감한 사회문제와 연동돼 있다. 근로자가 65세까지 일을 하면 기업은 신규 채용을 줄이게 된다. 신규 채용 감소에 따른 고통은 청년세대 몫이 된다. 정년 연장이 세대 갈등 또는 세대 간 일자리 전쟁으로 비화할 수 있는 셈이다. 1989년 대법원에서 55세였던 육체근로자 가동연한을 60세로 상향한 지 24년이 지나서야 60세 정년이 의무화된 것도 이런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히고설켜 있기 때문이었다.

정부 역시 정년 연장은 이르다는 입장이다. 고용노동부 송홍석 고령사회인력국장은 “대법원의 가동연한 판단은 육체근로자가 얼마나 오랜 기간 노동을 지속할 수 있는지를 판단한 것이다. 이는 기업이 최소한 언제까지 근로자 고용을 보장해야 하는지를 뜻하는 정년과 동일하게 보기는 어려운 개념”이라고 말했다. 60세 정년 의무화를 사업장에 적용한 게 불과 2~3년에 불과하다는 점도 정부로서는 부담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정년 연장보다 소득 공백기 지원에 초점을 맞춘다. 예를 들어 60세에 정년을 맞아 퇴직한 은퇴자는 62세에야 국민연금을 받을 수 있다. 일시적 소득 사각지대가 발생한다. 국민연금 수급 연령은 2033년까지 65세로 연장될 예정이다. 고령층의 소득 공백기가 더 길어질 수밖에 없다. 송 국장은 “정년이 지난 근로자를 계속 고용하는 기업에 장려금을 주는 식으로 고령층 소득 공백기를 줄이는 방안을 검토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미 국회에는 관련 법안들이 발의돼 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인 자유한국당 김학용 의원은 지난해 11월 고령자고용촉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사용자에게 정년을 연장하거나 정년퇴직한 근로자를 재고용하기 위해 노력할 의무를 부과하는 내용이다. 개정안에는 ‘고용부는 해당 조치를 한 사용자에게 인사와 임금 등에 대한 상담·자문, 장려금 지급 등 필요한 지원을 해야 한다’는 규정도 있다. 한국보다 앞서 고령화사회에 돌입한 일본의 경우 2013년 65세로 정년을 연장하기에 앞서 사업주에게 ‘노력 의무’를 부과하고 정부가 지원하는 과도기를 뒀었다.

그러나 마냥 정년 연장 논의를 미루기는 어렵다. 한국의 고령화 속도를 감안하면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신, 2013년 정년 60세를 의무화할 때처럼 갑작스럽게 할 게 아니라 충격 완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남 선임연구위원은 “한꺼번에 정년을 5세 이상 연장하려는 시도들은 부정적 고용효과를 크게 할 수 있다”며 “1년에 한 살씩 또는 2~3년에 한 살씩 여러 해에 걸쳐 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국민연금 수급 연령 연장과 맞물려 2033년까지 정년을 65세로 늘리는 방식도 대안으로 거론된다.

세종=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