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집에 돌아오면 언제나 소녀의 이마에 뽀뽀를 해줬다. 어느 날 아빠는 집에 돌아오지 못했고 이마 뽀뽀는 추억이 됐다. 16세 때 교회 모임에서 인권선언 문서를 읽었다. 아빠의 장례식에서 울려 퍼지던 바로 그 구절이었다. 소녀는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 순간 하나님이 자신을 목사로 부르고 있다고 느꼈다. 1988년 그녀는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 에벤에셀침례교회에서 말씀을 전했다. 아빠와 할아버지가 목회하던 교회였다. 1990년 에머리대에서 법학박사와 목회학석사(MDiv) 학위를 받았다. 그해 안수를 받고 목사가 됐다. 미국의 민권운동가 마틴 루서 킹 (1929~1968) 목사의 막내딸, 버니스 킹(Bernice A King·56·사진) 목사 이야기다.
마틴 루서 킹 목사는 1968년 4월 4일 쓰레기 압축기 사망 사고로 시작된 흑인 청소노동자 파업을 지지하기 위해 테네시주 멤피스를 찾았다. 연설을 끝내고 돌아온 그는 숙소였던 로레인모텔의 발코니에서 백인우월주의자였던 제임스 얼레이의 총에 맞아 39세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라는 명연설을 남긴 킹 목사는 암살당할 때까지 비폭력에 입각한 민권 운동가로 활동했다. 1955년 시내버스 흑인 차별에 반대하는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을, 1963년 워싱턴대행진 등을 주도하면서 1965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버니스 킹 목사는 아버지의 사상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현재 마틴 루서 킹 비폭력사회변화센터(킹센터) 대표로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비폭력 365(Nonviolence 365)’ 프로그램이 핵심이다. 마틴 루서 킹 목사의 비폭력 철학과 방법론에 입각한 교육훈련 프로그램으로, 비폭력이 사람들의 생활방식으로 자리 잡도록 돕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2014년 9월 미주리주 퍼거슨에서 백인 경찰이 쏜 총에 흑인 비무장 소년 마이클 브라운이 사망하면서 확산된 폭력과 분노를 비폭력으로 전환하는 데 빛을 발했다. 버니스 킹은 당시 한 인터뷰에서 “누가 시켜서 한 게 아니다. 이 일을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킹센터는 이 외에도 ‘사랑하는 공동체 회담(the Beloved Community talks)’에서 인종문제 이슈를, ‘킹과 함께하는 학생들’ 모임에서는 비폭력과 평등사상을 청소년들에게 알리고 있다.
버니스 킹 목사는 조지아주 변호사이자 국제여성포럼, 전국흑인여성협의회 회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27일 한국에 도착해 다음 달 6일까지 머물며 비무장지대(DMZ) 방문, 3·1운동 100주년 기념행사 참석, 국회의장 및 정부 관계자 면담, 여의도순복음교회 주일예배 설교와 청년들과의 희망토크 등 일정을 소화할 예정이다.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
27일 한국 오는 버니스 킹 목사 누구?
입력 2019-02-26 0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