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할아버지 흔적 찾고 북한식 경제발전 모색한다

입력 2019-02-26 04:01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 23일 전용열차에 탄 채 북·중 국경을 넘었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는 베트남 하노이를 향한 대장정의 시작이었다. 김 위원장의 선택은 1958년과 1964년 전용열차를 타고 중국 땅을 밟은 김일성 주석의 판박이 행보로 주목받았다. 당시 김 주석은 중국을 경유한 후 하노이에 도착해 호찌민 베트남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했다.

김 위원장은 할아버지 김 주석을 모방해온 것으로 유명하다. 이번에는 하노이 방문 경로까지 따라하면서 55년 전 김 주석이 방문한 장소들을 다시 찾을지 주목된다. 아울러 사회주의 국가 베트남의 경제를 급성장시킨 도이머이(개혁개방 정책) 중심지를 찾아 북한식 경제발전 구상에 참고할 것인지도 관심사다.

김창선 국무위원회 부장의 베트남 일정을 살펴보면 김 위원장의 동선이 예상 가능하다. 김 부장은 정상회담 장소, 정상 숙소로 거론된 호텔을 방문했고, 하노이 외곽 관광지와 산업단지도 들렀다.

김 위원장은 베트남에 도착하는 26일부터 3월 1일 떠날 때까지 여러 곳을 방문할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 가장 먼저 거론되는 곳은 하노이 북부 박닌성과 타이응우옌성 산업단지다. 하노이 입성 전 전용차량으로 이 중 일부 단지를 둘러볼 가능성이 있다.

박닌성과 타이응우옌성 산업단지는 외국기업의 제조업시설이 모여 있는 도이머이 정책의 중심지다. 베트남이 연평균 7%의 고도성장을 할 수 있었던 것에는 두 산업단지의 역할이 컸다.

박닌성에는 삼성전자가 2008년과 2013년 완공한 스마트폰 공장이 있다. 삼성전자는 베트남 최대 외국인 직접투자기업이다. 삼성전자 전체 스마트폰의 절반이 이 공장에서 만들어진다. 김 위원장이 이곳을 방문한다면 개혁·개방을 통한 경제개발 의지를 대내외에 과시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베트남 제3의 도시이자 항구 도시인 하이퐁도 김 위원장의 경제시찰 후보지로 꼽힌다. LG전자, LG디스플레이 등 한국 기업은 물론 베트남의 첫 완성차업체 빈패스트 공장도 있다.

김 위원장이 박장성 추모공원에 있는 북한군 조종사 14명의 묘역을 찾을 가능성도 있다. 이들은 베트남전 당시 지원군으로 파견됐다 사망했다. 하노이 진입로 부근에 있는 만큼 김 위원장의 첫 번째 방문지역이 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베트남전쟁을 전후로 냉전 시기 돈독한 관계였던 두 나라는 베트남전쟁이 끝난 후 단 한 번도 정상회담을 가진 적이 없다. 김 위원장이 이곳을 찾아 베트남과의 역사적 관계를 다시 확인할 가능성도 있다.

하노이 시내는 27~28일 이틀간 열리는 정상회담의 본무대다. 김 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첫 만남은 27일 오후 늦게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사실 이 경우 만찬이 필요한데, 그 장소로는 하노이 시내의 오페라하우스가 거론된다.

김 위원장은 28일 북·미 정상회담이 끝나도 3월 1일까지는 하노이에 체류한다. 이 기간은 응우옌 푸 쫑 베트남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 등 일정을 소화할 것으로 보인다. 장소는 주석궁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김 위원장은 쫑 주석과의 정상회담 전후로 베트남 국부 호찌민 주석 묘소를 방문해 참배하고 헌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호 주석은 생전에 할아버지 김 주석과 세 차례 정상회담을 했다. 그가 이끈 베트남전에서도 두 나라는 끈끈한 관계를 맺었다.

호 주석 묘소는 베트남을 방문하는 북한 고위관리들이 반드시 찾는 코스다. 지난해 하노이를 찾은 리용호 외무상도 호 주석 묘소에 참배했다. 김 부장도 최근 호 주석 묘소를 방문해 김 위원장 예상 동선을 점검했다. 호 주석이 1958년부터 11년간 묵었던 관저도 근처에 있다.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록된 꽝닌성 하롱베이도 김 위원장의 예상 방문지다. 하롱베이는 수려한 자연경관으로 연간 관광객을 100만명 이상 불러들이고 있다. 북한이 공을 들이고 있는 원산 갈마해안 관광지구의 매력적인 롤 모델이기도 하다. 하롱베이는 김 주석이 64년 두 번째 베트남 방문 때 찾았던 곳이기도 하다. 김 위원장이 북·미 정상회담과 북·베트남 정상회담을 모두 소화한 뒤 다녀갈 가능성이 있다.

이택현 기자 alle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