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 오빠같은 평범한 영웅들, 안방극장 ‘들었다 놨다’

입력 2019-02-25 20:25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인물들이 사회 문제를 해결하며 영웅으로 거듭나는 ‘평범한 히어로’ 서사를 갖춘 드라마 ‘열혈사제’(위 사진)와 ‘아이템’. SBS·MBC 제공

최근 이변을 일으킨 대중문화 콘텐츠 두 개를 꼽으라면, 영화 ‘극한직업’과 드라마 ‘열혈사제’(SBS)가 있다. ‘극한직업’은 코미디로는 이례적으로 15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역대 박스오피스 2위에 올라섰다. ‘열혈사제’는 최근 지상파 드라마의 침체를 비웃듯 첫 회부터 두 자릿수 대 시청률을 기록했고, 지난 23일 방송된 8회에선 15.7%(닐슨코리아)를 나타내며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극한직업’은 마약반 경찰 5인이 범죄조직 소탕을 위해 위장 창업한 치킨집이 ‘맛집’으로 대박을 터뜨리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변변치 않은 성과로 해체 위기에 처했던 마약반원들이 마약 유통 조직의 보스를 잡아 정의를 구현하는 모습은 관객들에게 적잖은 카타르시스를 안겼다.

‘열혈사제’는 형사가 아니라 사제가 주인공이다. 이름은 김해일(김남길). 분명 신부인데 자경단의 일원 같은 인상을 풍긴다. 국정원 요원 출신으로 분노조절 장애를 지닌 그는 불의를 보면 물리력을 동원해서라도 해결해야 직성이 풀리는 ‘열혈인’ 자체다. 공간적 배경은 가상의 지역 구담구로 범죄자들이 득실거리는 영화 ‘배트맨’의 고담시를 연상케 한다. 김해일은 구청 경찰 검찰 등 권력기관이 카르텔을 형성해 타락한 그곳을 정화하고 구원할 진정한 영웅의 면모를 지닌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이쯤에서 두 작품의 공통점은 명확해진다. 특별한 영웅이 아니라 평범한 인물들을 전면에 세운 서사라는 점이다. 이들은 히어로나 해결 가능할 법한 사회적 문제에 부딪쳐 정의를 실현해낸다. 이를테면, ‘평범한 히어로’인 셈이다.

윤석진 드라마평론가는 “서양의 히어로물이 특별한 능력을 내세우는 것과 달리 옛 설화 등을 보면 한국적 영웅은 평범함 속 비범함을 지닌 경우가 더 많았다. 영웅을 보는 즐거움과 팍팍한 현실의 구조적 해결을 바라는 시청자들의 욕망을 동시에 충족시켜 줄 수 있다는 점에서 흥행에 유리한 스토리 전개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평범한 히어로’라는 불패 공식에 기댄 콘텐츠들이 잇달아 선보이는 추세다. 지난 11일 첫 전파를 탄 ‘아이템’(MBC)도 비슷한 흥행 코드를 가미한 드라마로 볼 수 있다. 사진첩 향수 라이터 등 일상 속 물건에 초능력이 깃들어 있다는 독특한 설정이다. 소중한 사람을 지키고자 아이템을 둘러싼 음모를 파헤쳐 가는 검사 강곤(주지훈)과 프로파일러 신소영(진세연)의 이야기를 미스터리하게 그려냈다.

이 드라마는 ‘평범함’을 정조준하면서 기획 의도에 이렇게 쓰고 있다. ‘엑스맨이나 어벤져스처럼 특별한 인간들만이 발휘하는 초능력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이 지니고 있던 평범한 물건들, 우리 사회의 선한 열망, 선한 간절함이 담긴 물건들을 둘러싼 이야기’라고.

그렇다면 이런 평범한 영웅들의 인기는 언제까지 이어질까. 전문가들은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는다. 윤 평론가는 “한국인의 ‘일상성’에 기댄 콘텐츠라고 볼 수 있다. IMF 때 금 모으기 운동이나 2년 전 촛불혁명 등에서 알 수 있듯, 한국인은 보통의 사람들이 위기를 해결해나가는 서사와 늘 공명해왔다”고 했다.

강경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