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유성식] 보수의 反지성과 기회주의

입력 2019-02-26 04:03

27일이면 자유한국당이 전당대회에서 지도부를 구성해 새 출발을 한다. 이후 얼마간 당 지지도가 높아지는 ‘컨벤션 효과’를 누릴 수도 있겠다. 그러나 상승세는 누가 대표가 되든 오래가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많다.

단지 전당대회 과정에서 드러난 난맥상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저변의 구조가 만들어낸 현상일 뿐이다. 구조는 구성원들의 의식과 행동을 지배하는 그 무엇이다. 이게 바뀌지 않으면 어떤 이벤트를 갖다 붙여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는다.

필자가 보기에 문제의 구조는 핵심 지지층의 ‘반(反)지성’과 의원들의 ‘기회주의’다. 이 구조가 건재하고, 앞으로도 달라질 확률이 높지 않다는 게 치명적 올가미다.

우치다 다쓰루(內田樹) 등이 집필한 ‘반지성주의를 말하다’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19세기 말 프랑스 저널리스트인 에두아르 드뤼몽은 ‘유대인의 프랑스’라는 책에서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 후 가장 막대한 이익을 본 자들은 유대인이다. 그러므로 혁명을 계획하고 실행한 자는 유대인이라고 추론해도 틀리지 않다”고 말했다. 그의 책은 당대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됐고, 많은 독자가 열광적인 팬레터를 보냈다. “복잡하던 머릿속이 단번에 개운해졌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이 현 여권의 음모와 소위 ‘탄핵 7적’ 중심의 배신자들 때문이라는 것은 핵심 지지자들에게 부동의 사실이다. 이들에게 박 전 대통령과 당의 결정적 원죄는 흐릿하다. 프랑스 혁명이 완성되기까지 10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벌어진 살육과 혼란에 대한 수치심을 어떻게든 전가해보고 싶었던 일부 프랑스인과 다르지 않다. 이들은 청와대가 주도한 ‘진박 놀음’에서 비롯된 총선 참패를 수습하기 위해 치러진 2016년 8월 전당대회에서 ‘친박 중 친박’ 이정현 의원을 대표로 뽑은 주역이기도 했다.

그리고 다수 의원들은 뭔가 꺼림칙한 구석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들의 조직력과 극성 때문에 이들에게 포획돼 있다. 이 구조가 그간 벌어진 온갖 납득할 수 없는 행태의 발원점이다.

헌법적으로 완성된 탄핵에 대한 사실상의 불복과 과거 한나라당에서도 볼 수 없던 극우의 득세는 반지성 구조의 필연적 산물이다. 유력 당권주자인 황교안 후보의 행보도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탄핵에 대한 찬성과 반대 사이에서 모호한 태도를 취하거나, 최순실 태블릿PC 조작 의혹까지 들고 나온 것은 그가 그 정도로 사리분별을 못해서가 아닐 것이다. 이런 그에게 반지성 세력을 배신하고 당을 정상으로 되돌릴 것을 요구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기회주의도 반지성 흐름에 의해 합리화된다. 한국당에서는 탄핵 이후 뭔가 바꿔보려고 하다가 나갔던 사람은 역적이고, 눈치를 살피며 웅크려 있던 의원들은 ‘당을 지킨 사람들’이다. 보수의 몰락을 목도하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이 훈장이다. 이들은 정권 지지율 하락으로 좀 살 만하다고 느끼는지 복당파에 텃세를 부린다. 생계형 정치의 성공시대다.

정당 개혁의 요체는 노선 현대화와 인적 쇄신인데 호소력이 큰 것은 후자다. 하지만 변한 게 없다. 지난번 몇몇 당협위원장 교체를 위한 이벤트를 실적으로 드는 것은 민망하다. 의원직을 걸고 혁신을 요구하든지, 부끄러워서 정치를 그만하겠다는 결기를 보일만도 한 환경인데 내내 조용했다. 만연한 복지부동에는 중진과 초·재선의 구분이 없다.

1979년 박정희 전 대통령 사후 공화당에서조차 소장파 정풍운동이 일어나 두 명(박찬종, 오유방)이 제명을 당했다. “먼저 화내는 사람이 손해”라는 처세일까. 지금은 의원 상당수가 유력 후보에게 줄을 서 있다고 한다.

반지성과 기회주의를 도려내지 못하면 한국당의 내년 총선과 차기 대선 전망은 비관적이다. 지지층 확대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민심이 정권에서 아무리 이반해도 양식(良識)이 부족하고, 뻔뻔한 세력에게 표를 줄 사람은 제한적이다. 이대로는 영락없이 축소된 지지층에 갇혀 자기들끼리 권력투쟁에 몰두하는 ‘0.5정당’ ‘불임정당’ 꼴이다. 20년이든, 100년이든 이해찬 민주당 대표의 장기집권론이 기대고 있는 지점도 여기다.

그러나 탈출은 지난해 보인다. 구조는 쉽사리 허물어지지 않는다. 이에 도전할 리더십 역시 눈에 띄지 않는다. 뜻있는 의원 또는 집단의 행동과 희생을 기대하기에는 기회주의의 뿌리가 깊어 보인다. ‘이번에 출범할 지도부가 총선까지 가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이 왜 나오는지 한국당 의원과 지지자들은 새겨보기 바란다.

유성식 명지대 교양대학 객원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