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北, 비건에게 “이번엔 영변 폐기까지” 통보

입력 2019-02-24 18:57 수정 2019-02-24 23:42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3일 오후 평양역에서 전용열차에 올라 손을 흔들고 있다. 북한 노동신문은 24일 이 사진과 함께 김 위원장이 2차 북·미 정상회담 참석차 베트남 하노이로 떠났다는 기사를 1면에 실었다. 26일 하노이에 도착할 것으로 보이는 김 위원장은 27~28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만나 두 번째 비핵화 담판을 벌인다. 신화뉴시스

북한이 2차 북·미 정상회담 의제를 놓고 지난 6~8일 평양에서 미국 측과 실무협상을 할 때 영변 핵시설의 동결 혹은 폐기가 이번 정상회담에서 합의할 수 있는 ‘마지노선’이라고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미 협상 상황을 잘 아는 외교 소식통은 24일 “평양 실무협상에서 북측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영변 핵시설 이상은 합의할 수 없다는 뜻을 미국 측에 확실히 전했다”고 말했다. 다만 북한 핵 프로그램의 핵심인 영변 핵시설의 동결 또는 폐기는 북·미가 비로소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의 ‘입구’에 들어선다는 측면에서 이 역시 상당한 성과일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달 중순까지도 이번 2차 정상회담에서 ‘영변 플러스 알파’가 합의될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 평양 실무협상에 나섰던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도 지난달 말 스탠퍼드대 강연에서 ‘영변 핵시설 및 영변 외 플루토늄 및 우라늄 농축시설 폐기’ ‘포괄적 핵 신고 및 사찰·검증’ ‘핵무기와 미사일 등 모든 대량살상무기(WMD) 비축고 폐기’ 등을 언급한 바 있다.

그러나 최근 들어 기류가 변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20일(현지시간) 협상 장기화를 시사했다. 미 정부 고위 당국자도 다음날 브리핑에서 ‘WMD와 미사일 프로그램 동결’을 언급했다. 이번엔 영변 핵시설 이상은 내줄 수 없다는 북한의 입장이 반영된 미국의 기조 변화로 보인다. 따라서 ‘플러스 알파’로 거론돼 온 영변 외 플루토늄 및 우라늄 농축시설과 수소폭탄 재료인 중수소를 생산하는 시설 폐기 등은 다음 정상회담 의제로 넘어갈 가능성이 있다.

그렇더라도 전문가들은 영변 핵시설의 동결 혹은 폐기가 합의되는 것이 ‘스몰 딜’이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영변의 동결은 북한이 핵물질을 더 이상 생산할 수 없도록 만드는 의의가 있다”고 설명했다. 한 국책 연구기관 관계자도 “최근 ‘플러스 알파’가 자주 거론되면서 영변 핵시설이 과소평가된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이번 정상회담의 핵심은 북한이 ‘핵 개발의 심장’인 영변 핵시설을 내놨을 때 미국이 무엇을 줄 수 있느냐다. 연락사무소 설치와 인도주의적 지원 등이 예상되지만 북한이 받아들일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27~28일 정상회담이 열릴 베트남 하노이에서 비건 대표와 김혁철 북한 국무위원회 대미특별대표 간 의제 협상이 나흘째 이어지고 있는데다 ‘톱 다운’식 협상을 선호하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의 성향을 고려하면 정상회담에서 극적인 ‘빅 딜’이 이뤄질 가능성은 여전히 있다.

김 위원장을 태운 전용열차가 지난 23일 하노이를 향해 출발하면서 북한의 비핵화 로드맵을 만들어낼 운명의 한 주가 시작됐다. 김 위원장은 전용열차를 타고 평양역을 출발, 중국 대륙을 종단하는 중이다. 조선중앙통신은 김 위원장이 응우옌 푸 쫑 베트남 국가주석의 초청을 받아 베트남을 ‘공식친선방문’한다고 보도했다. 김 위원장은 26일 오전 하노이에 도착해 다음달 1일까지 머물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25일(현지시간) 워싱턴을 출발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24일 트위터에 “싱가포르에서 열린 1차 정상회담에서 계속 진전되기를 기대한다. 비핵화(Denuclearization)?”라며 “김 위원장은 핵무기가 없다면 경제 대국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북한의 지리적 위치와 인적 자원(특히 그) 덕분에 북한은 다른 어떤 나라보다 빠르게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고 썼다.

최승욱, 하노이=권지혜 기자 apples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