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와 김혁철 북한 국무위원회 대미특별대표가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는 베트남 하노이에서 나흘 연속 만나 의제 협상을 벌였다. 양측은 비핵화 개념 정의를 비롯해 영변 핵시설 폐기·검증, 비핵화 로드맵을 논의할 워킹그룹 구성을 하노이 선언에 담기 위해 막판 조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상회담을 사흘 앞둔 24일 오후 2시30분쯤(현지시간) 시작된 북·미 의제 협상은 오후 5시쯤 끝났다. 김 대표와 김성혜 통일전선부 통일책략실장을 태운 북측 벤츠 차량은 오후 5시5분 협상 장소인 파크 하노이 호텔을 빠져 나갔다. 북측 대표단이 지난 21일부터 나흘 내내 비건 대표의 숙소가 있는 이 호텔을 찾아 의제 협상을 이어간 것이다. 비건 대표와 김 대표는 이날 오전엔 각자 일정을 소화하며 잠시 숨고르기하는 모습도 보였다.
김 대표와 비건 대표 모두 협상 상황을 묻는 취재진 질문에 함구하고 있어 구체적인 내용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현지 소식통들은 분위기가 나쁘지 않다고 전했다. 비건 대표는 전날 ‘협상에 진전이 있었느냐’는 질문에 엄지를 치켜드는 제스처를 보였다.
오는 26일 하노이에 도착할 것으로 보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정상회담 의제 관련 “모든 것이 테이블 위에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주한미군 감축은 정상회담 의제가 아니라고 거듭 확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2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기자들을 만나 ‘정상회담에서 주한미군 감축을 논의하느냐’는 질문에 “아니다. 그렇지 않다. 그것은 논의 대상이 아니다”고 명확하게 선을 그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3일 CBS방송 인터뷰에서도 ‘한국에 미군을 계속 주둔시킬 것인가’라는 질문을 받고 “그렇다. 다른 얘기는 한 번도 안 했다”고 했었다.
연일 정상회담 낙관론을 펴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내가 북한 비핵화를 이룰 유일한 사람’이라는 취지의 언급도 했다고 한다. 미 정치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9일 문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하던 중 이같이 말하고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언론 보도에 불만을 제기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인식은 비핵화 회의론이 짙은 워싱턴 조야 분위기와는 상반된 것이다.
문 대통령은 주말 공식일정을 잡지 않고 평양을 출발한 김 위원장의 동선과 북·미 협상 상황을 보고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문 대통령은 2차 북·미 정상회담 결과가 발표될 오는 28일도 일정을 비워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25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북·미 정상을 향한 메시지를 내놓을 것으로 관측된다. 청와대 관계자는 “기도하는 심정으로 북·미 협상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북·미 정상회담 전 한·미·일 3국 간 사전 의제 조율은 무산됐다. 존 볼턴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한국 방문 계획이 갑작스레 취소됐기 때문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미국 측에 사정(베네수엘라 사태)이 생기면서 회동이 무산됐다”며 “정의용 국가안보실장과 볼턴 보좌관 채널 외에도 한·미 소통채널이 여럿 유지되고 있어 의제 조율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북한과의 실무협상을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주도하고 있어 볼턴 보좌관의 존재감도 과거와는 다른 형편이다.
하노이=권지혜 이상헌 기자, 강준구 기자 jhk@kmib.co.kr
‘비핵화 로드맵’ 막판 조율… 하노이 소식통 “분위기 안 나쁘다”
입력 2019-02-24 18:57 수정 2019-02-24 2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