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단체 기관장 ‘공모제’ 잇단 잡음… “추천제 도입 필요”

입력 2019-02-26 04:03 수정 2019-03-18 09:35

예술단체 기관장이나 예술감독 등의 선임 과정에서 잡음이 끊이지 않으면서 현행 공모제를 보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공모제는 ‘낙하산’과 불투명한 인사라는 임명제의 폐단을 극복하기 위해 도입됐지만 선임 지연으로 업무 공백이 커지는 경우가 많고, 우수 인재 발탁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작용하기도 한다. 고질적인 ‘코드 인사’ 논란도 이어지고 있다.

문재인정부 들어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예술기관 중 선임이 지연된 대표적 사례는 국립극장이었다. 2017년 9월 안호상 전 극장장 사퇴 이후 1년 넘게 극장장 자리가 공석이었다. 문체부는 여러 사람이 공모에 지원했지만 좋은 후보자를 찾기 어려워 선임이 지연됐다고 설명해왔다. 국립극장은 지난해 9월에야 김철호 서울시국악관현악단 단장을 극장장으로 맞이했다.

최근 미술평론가 윤범모씨가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으로 선임되는 과정에서는 공정성 논란이 일었다. 최종 후보자 3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역량평가를 윤씨가 통과하지 못했음에도 문체부가 재평가를 실시해 윤씨를 최종 낙점했기 때문이다. 미술계 관계자는 25일 “윤씨는 민중미술에 깊이 관여했다. 정권의 코드에 잘 맞는 윤씨를 앉히기 위해 (정부가) 무리수를 둔 것 같다”고 했다.

현재 진행 중인 국립극장 산하 국립창극단 예술감독 선임에서도 잡음이 나오고 있다. 한 지원자는 “후보자 면접이 진행되기 전부터 내정된 사람이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심사가 공정하게 진행되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다음 달 중순 임기가 만료되는 예술의전당 사장 직은 임명제이지만 몇 달 전부터 친정부 인사가 내정돼 있다는 얘기가 돌고 있는 실정이다.

실무자들은 이런 인사 공백이나 파행으로 겪는 어려움을 호소한다. 예술단체 한 직원은 “정파에 상관없이 유능한 사람을 뽑으면 좋겠다. 이 분야를 모르는 기관장이 오면 보고와 설명에 일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쏟아야 하기 때문에 두 배로 일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문체부도 현행 기관장 공모제를 보완할 필요가 있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문체부 관계자는 “현행 공모제에서는 적임자가 지원하지 않아 기관장을 뽑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상반기 중에 더 효율적으로 산하 기관장을 선임하는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 사이에는 임명제와 공모제의 장점을 살릴 수 있는 추천제가 대안으로 거론된다(표 참조). 임명제는 신속하게 진행할 수 있기 때문에 업무 공백이 적고 관련 기관의 협업이 용이한 반면 절차의 정당성이 담보되지 않는다. 공모제는 외부 민간 인사를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유능한 전문가가 지원하지 않을 경우 선임이 지연된다는 약점이 있다.

추천제는 추천위원회가 올린 복수의 후보자 2~3인을 임명권자가 최종 선임하는 방식이다. 박양우 중앙대 예술대학원 교수는 “유능한 인사 중에는 공모에 직접 지원하는 것 자체에 거부감을 갖는 경우도 있다”며 “추천제를 도입하면 유능한 전문가를 후보자로 제안할 수 있고, 코드 인사 논란을 피하면서 임명권자에게 최종 선택권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활동 중인 정치용 코리안심포니 오케스트라 예술감독은 추천제로 뽑힌 경우다. 문화계 인사와 단원 대표 1명을 포함한 추천위원회가 그를 포함한 복수의 후보자를 추천했고, 이사회가 정 감독을 최종 선발했다. 노승림 문화정책학 박사는 “전문가들로 구성된 추천위원단이 후보자를 추천하고 이사회나 임명권자가 최종 결정하도록 하면 공정성과 전문성이 확보될 수 있다”고 말했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