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베트남 방문은 북한 최고지도자로서 55년 만에 이뤄지는 것이라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특히 김 위원장으로선 이번 방문이 베트남과의 혈맹 관계를 확실하게 복원시키고, 베트남식 경제개발모델 수용 여부를 가늠해볼 수 있는 일석이조의 효과도 있다.
응우옌 푸 쫑 베트남 공산당 국가주석의 초청으로 성사된 북한의 친선방문은 1964년 11월 김일성 주석이 하노이를 찾은 이후 처음이다. 끈끈한 혈맹 관계를 과시했던 양측은 베트남이 시장경제 체제를 받아들이면서 사이가 멀어졌었다. 그런 만큼 김 위원장의 베트남 방문은 2차 북·미 정상회담에 버금가는 중요한 외교적 이벤트다.
북한과 베트남은 반세기가 넘는 애증의 역사를 공유하고 있다. 북한은 66년 베트남전에 공군과 공병부대를 파병해 북베트남과 함께 싸웠다. 당시 북한은 포탄과 수송차량 등 전쟁 물자도 북베트남에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일성 주석은 “하노이 상공을 평양의 하늘처럼 사수하라”고 결전 의지를 다졌다. 베트남 정부는 베트남전 종료 이후 사망한 북한 인민군 14명에게 열사 칭호를 하사하고 묘지를 조성했다.
피로 맺어진 양측 관계는 78년 12월 베트남이 캄보디아를 침공하면서 금이 갔다. 캄보디아의 사회주의 정권을 지원하던 북한은 베트남의 무력침공은 노골적 군사개입이라고 비판했다. 양측은 이후 하노이와 평양에 있던 대사관도 철수시켰다. 양측 외교관계는 84년에야 가까스로 복원됐지만, 이후에도 파열음은 계속 나왔다.
베트남이 92년에 한국, 95년에 미국과 연이어 수교를 맺은 것도 북한에 달가운 일은 아니었다. 당시 북한은 “환영도 반대도 하지 않는다”고 밝혔지만, 북한 입장에서 베트남은 사회주의를 또 한번 배신한 셈이었다. 양측 관계는 2007년 농 득 마잉 베트남 총비서가 호찌민 베트남 주석 이후 처음으로 북한을 방문한 것을 시작으로 차츰 복원됐다.
김 위원장이 이번 방문을 통해 베트남의 ‘도이머이(개혁개방)’를 북한에 도입할 수 있을지를 검토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베트남은 공산당 1당 독재체제면서도 20여년 전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도입해 경제발전의 성과를 거뒀다. 김 위원장은 삼성전자 스마트폰 공장이 있는 박닌성이나 LG디스플레이가 진출한 하이퐁 방문을 통해 북한이 베트남을 개발 모델로 생각하고 있다는 신호를 보낼 수도 있다.
미국도 북한의 도이머이 정책 도입을 바라는 마음에서 2차 정상회담 개최지로 베트남이 선정되는 데 적극 동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위원장이 두 눈으로 직접 베트남 경제 발전상을 보면 개혁개방 노선을 추진하고 싶은 뜻이 굳건해질 수 있다는 판단 때문으로 보인다. 칼라일 세이어 뉴사우스웨일스대 정치학 교수는 최근 워싱턴포스트 인터뷰에서 “도이머이 정책은 미국이 북한을 자발적 고립에서 벗어나게 하는 전략에서 중요한 요소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미국에도 이번 하노이 정상회담이 갖는 의미는 상당하다. 미국과 베트남은 한때 치열한 전쟁을 벌인 적대국이었지만, 95년 수교 이후 경제적 협력 관계를 꾸준히 이어왔다. 양국이 관계를 정상화한 결정적 이유도 당시 미국의 동남아시아 시장 확대 정책과 베트남의 개혁개방 방침이 서로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양국 교역량은 지난 20년간 8000%로 늘었다.
조민아 기자 minajo@kmib.co.kr
김정은 베트남 방문, 혈맹 복원·개혁개방 수용 계기 되나
입력 2019-02-25 0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