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신한은행은 한때 여자프로농구(WKBL)의 최강팀으로 불렸다. 한국 프로스포츠 사상 최초로 정규리그·챔피언결정전 통합 6연패를 달성하며 ‘신한 왕조’의 이미지를 확고히 했다. 하지만 14년 만에 정규리그 꼴찌로 주저앉은 올 시즌의 상황은 전혀 다르다. ‘농구 명가’ 신한은행은 어쩌다 최하위로 추락하는 수모를 겪게 된 것일까.
과거 신한은행은 화려했다. 2007년부터 2012년까지 단 한 번도 정상을 놓치지 않았다. 전주원 정선민 하은주라는 베테랑 스타들이 중심을 잡은 가운데 최윤아 김단비 강영숙 김연주 등 젊은 선수들이 가세해 빈 틈 없는 전력을 꾸렸다. 스페인 프로축구 프리메라리가의 클럽 레알 마드리드처럼 선수 구성이 화려하고 무적을 자랑해 ‘레알 신한’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였다.
그런데 올 시즌 신한은행은 일찌감치 최하위를 확정했다. 24일 삼성생명을 87대 75로 꺾고 7연패에서 탈출했지만 5위 KEB하나은행과의 승차가 무려 5.5경기다. 이제 정규리그 4경기만 남겨둔 가운데 5승 26패로 승률이 1할대(0.161)에 머물고 있다. 신한은행이 꼴찌로 추락한 것은 2005년 겨울리그 이후 처음이다.
일단 신한은행이 올 시즌 추락한 이유는 주축선수들의 잇단 부상과 외국인 선수 농사 실패가 꼽힌다. 유승희와 김아름은 부상으로 시즌아웃 됐고, 이경은은 무릎 부상으로 결장이 잦았다. 최근엔 ‘에이스’ 김단비마저 허리 통증으로 전력에서 이탈했다. 외국인 선수 문제로도 골머리를 앓았다. 올 시즌 외국인 선수로 뽑은 나탈리 어천와가 개인사정으로 팀에 합류하지 않으면서 일이 꼬였다. 이후 대체선수로 영입한 쉐키나 스트릭렌과 자신타 먼로는 기대 이하의 활약을 보였다.
그러나 신한은행이 추락한 핵심적인 이유는 세대교체 실패에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정은순 KBSN 해설위원은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신한은행이 부상자가 많아 부진한 것으로 보이지만, 외국인 선수를 제대로 뽑았어도 플레이오프 진출이 어려웠을 것”이라고 냉정히 말했다. 현재 신한은행은 왕조 시절부터 뛴 김단비를 제외하면 마땅히 내세울 만한 국내선수가 없다. 성적의 정점을 찍은 2012년 이후 과감한 외부 영입이 없었다. 그렇다고 뚜렷한 내부 육성 기조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정 위원은 “세대교체가 필요한 시기에 젊은 선수들을 발굴하거나 육성하지 못한 문제가 크다. 계속 쓰던 선수만 기용하고 의존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며 “용인 삼성생명은 4~5년간 리빌딩을 거쳤고, 최근 신인급의 성장을 바탕으로 성적을 내고 있다. 신한은행도 길게 내다보고 세대교체에 초점을 맞출 때”라고 강조했다.
신기성 감독의 용병술과 지도력도 도마에 오르고 있다. 2016년 부임했지만 자신의 색깔을 전혀 못 내고 있다. 또 가드 출신답게 “빠른 농구를 하겠다”고 약속했지만 가드진 육성 실패로 내세웠던 목표에 가까이 다가서지 못하고 있다.
박구인 기자 captain@kmib.co.kr
몰락한 왕조… 신한, ‘단비’만으론 해갈 못 한다
입력 2019-02-24 21:01 수정 2019-02-24 21:19